매일신문

대구 R&D 특구 '또 속탄다'

대구 제외땐 테크노폴리스 휘청

우리 지역사회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였던 '대덕연구개발특구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법(R&D특구법)'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대구지역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 노력으로 '대덕만을 위한 R&D특구법'에서 '개방형 R&D특구법'으로 입법이 됐지만, 다음 달 중순 시행령 확정을 앞두고 과학기술부와 대구, 포항, 광주, 대전, 충북 등 각 지역마다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시행령 내용에 따라 '대구경북과학기술연구원(DGIST) → R&D특구 → 대구테크노폴리스'를 지향하던 대구의 달성 현풍 일대 개발 구상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첨단소재 분야에 특화한 R&D특구를 기대했던 포항 역시 도시발전 계획에 적잖은 영향이 우려된다. 대구와 포항의 R&D특구 지정 여부는 향후 대구경북의 산업 발전과 교육 등 전 분야에 걸쳐 운명을 좌우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속타고 다급한 대구= 과기부는 '개방형 R&D특구법' 제정에도 불구하고 'R&D특구= 대전 대덕단지'라는 등식을 은연중 고집하고 있는 상황이다. R&D특구 지정요건을 적시한 시행령(안)도 당초 '국립연구기관 또는 정부출연연구기관 3개 이상을 포함한 과학기술분야 연구기관 40개 이상' '이공계 대학 3개 이상'으로 만들었다. 이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곳은 현재는 물론 앞으로 상당기간 대전 대덕과학기술단지뿐이다.

애써 '개방형 R&D 특구법'을 제정한 노력이 헛수고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지자 지역 정치권의 반발은 상당했다. 결국 과기부는 5월 8일 국립연구기관과 정부출연연구기관에 '분원'을 포함시키고, 이공계 학부를 둔 대학(산업대, 전문대, 기술대 포함)을 R&D특구 지정요건에 포함시키는 완화한 R&D특구 시행령 입법예고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대구시의 고민은 여기서부터 더 깊어졌다. 한나라당 쪽에서는 'R&D특구 지정요건을 이만큼 완화했으면, 이제 대구시가 알아서 처리할 차례'라는 입장인 반면, 대구시는 '다른 법률에 의한 과학기술(연구)원이 설립되어 있는 곳'을 R&D특구로 지정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시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경우, 대덕과 더불어 대구경북과학기술연구원이 설립될 달성 현풍 및 광주과학기술원이 있는 광주가 R&D특구로 포함되게 된다.

대구시 관계자는 "달성 현풍 일대가 R&D특구로 지정되지 못하면 대구테크노폴리스 실현은 대단히 어려워진다"면서 "대구출신 정치인들조차 사안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속이 탄다"고 말했다.

DGIST 연구용역을 맡은 STEPI(과학기술정책연구원) 컨소시엄은 대구테크노폴리스 조성을 전제로 DGIST 입지를 달성 현풍으로 확정한 만큼 R&D특구 지정이 무산되고 대구테크노폴리스 조성이 지지부진해질 경우 새로운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합리성을 강조하는 경북도와 포항= 포항과 경북도는 R&D특구 논의가 국가주도 연구개발 기반(국립연구기관·정부출연연구기관)만 중시하는 상황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포항에는 방사광가속기연구소,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 나노기술집적센터, 포스코기술연구원 등 민간부문이지만 국가적 R&D과제를 수행하는 R&D기반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지역별 연구개발 여건과 성과(2003년 12월 말 기준)를 보더라도 포항의 연구개발비는 4천638억 원으로 대구 2천315억 원은 물론 광주 2천533억 원을 훨씬 상회하고 있다. 연구성과의 지표라고 할 수 있는 특허출원(2000~2004년 누계)도 포항은 1만1천713건으로 대구 7천328건, 광주 1만623건을 웃돌고 있다.

대전 대덕연구단지가 2조3천978억 원의 연구개발비로 1만8천700건의 특허를 획득한 것과 비교할 때, 포항의 R&D 역량이 얼마나 우수한지 알 수 있다.

경북도 김학홍 과학기술진흥과장은 "포항은 세계적 수준의 포스텍(포항공대)과 글로벌기업 포스코 등을 바탕으로 부품·소재산업의 핵심기술을 선도해온 과학도시"라면서 "지방과 민간부문의 자생적 연구개발 역량을 도외시하는 것은 국가균형발전이라는 참여정부의 정책기조와도 배치된다"고 주장했다. 김 과장은 "따라서 R&D특구 지정요건에 '국립 또는 정부출연연구기관에 준하는 연구시설 및 인력을 갖추고 국가적 연구개발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연구기관'을 추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상이몽 대전·충북 vs 대구·광주= 광주는 겉으로 대구와 보조를 같이하고 있다. 하지만 분위기는 훨씬 여유롭다는 소식이다. 광주과기원과 한국정보통신연구원(ETRI) 광통신연구센터,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등을 이미 유치해 놓고 있어 R&D특구에 한 걸음 더 다가서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충북은 '초광역 R&D특구'를 주장하고 나섰다. 대덕연구단지와 인접한 오송과학단지까지 범위를 넓혀 R&D특구로 지정하자는 것이다. "하나도 제대로 성공시키기 어려운 것이 R&D특구인 만큼, 당초 취지대로 대덕만으로 R&D특구를 제한해야 한다"는 대전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는 소식이다.

대구, 포항, 광주, 충북, 대전의 서로 다른 요구에 직면한 과기부의 최종 선택은 무엇이 될까. 지역 전문가들은 "고심을 거듭한 과기부가 원칙에 입각한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고, 이 때문에 우리 지역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석민기자 sukm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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