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희망편지-학원 불경기 명암

학원가 취재를 하다 보면 심각한 표정으로 상담실 문을 두드리는 학부모를 자주 만난다. 대개 자녀의 성적이 기대에 차지 않는다거나, 학습 습관이나 태도가 불만이거나, 진로가 불안하거나 하는 이유다. 이따금 상담을 끝낸 학원 관계자들이 한숨만 쉬는 경우가 보인다. "왜 그러냐"고 물으면 "이해는 가지만 답답해서"라고들 한다.

"이야기를 들어 보면 공부로는 길이 잘 안 보이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그래도 학부모는 하소연하죠. 돈이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좋은 선생님 좀 붙여 달라고 말입니다. 잘 안 되는데 왜 시킵니까 하고 물으면 한결같이 말합니다. 원이라도 풀어야 한다고요." 학년이 높을수록, 학부모의 경제력이 나을수록 이런 모습은 더하다고 한다.

자녀에게 더 좋은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부모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돼 버린, 대학 진학 외에는 미래로의 길이 쉽사리 보이지 않는 우리 사회에서 사교육은 어찌할 수 없는 필요악이다.

정부와 교육당국이 사교육비 절감을 지상 과제로 삼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학원으로 가는 학생들의 발길을 묶는 방법이라면 무엇이든 쓰겠다는 자세다. 그렇게 내놓은 정책이 조금이라도 먹히면 이런저런 통계 수치를 제시하며 성과를 자랑하는 것도 자연스런 일이 됐다.

그렇게 보면 요즘 학원가의 불경기는 좋은 홍보감이 될 듯도 하다. 지난해부터 교육당국이 내놓은 EBS 수능강의, 내신 중심 2008학년도 대입제도 등이 사교육 수요를 크게 줄여 학원가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고 떠들 만하다.

말대로라면 좋겠지만, 문제는 교육당국의 이런 모습이 학부모는 물론 학원 관계자들에게도 냉소받고 있다는 점이다. 사교육 수요를 떨어뜨리는 주요한 원인이 교육정책에 있는 게 아니라 극심한 불경기 때문이라는 건 누구나 안다. 최근의 교육 정책이 효과를 미친 건 사교육비 절감이 아니라 신종 사교육 탄생이라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정작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는 학원의 불경기가 심각한 교육 왜곡을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운영이 어렵다고 학원이 편법과 거짓을 쓴다면 자칫 학생들의 장래를 망칠 수도 있다. 잘못된 학습 습관을 들이거나 공부에 대한 오해를 갖게 만들 경우 이를 바로잡는 데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원 풀이'를 바라는 학부모가 이런 데 말려들면 부모자식 간에 원망과 불신만 키우게 된다.

장사가 잘 안 되는 음식점이 손님을 끌기 위해 거짓 선전을 하거나 질 낮은 재료를 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얼마 전 정부가 내놓았던 자영업자 대책은 실업이라는 근본 원인을 외면한 엇나간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교육정책의 목표 역시 학원을 문 닫고 못 열게 만드는 게 아니라 공교육의 곪은 부위에 새 살을 돋게 하는 데 맞춰져야 한다.

김재경기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