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100승의 대기록을 달성한 박찬호. 그리고 벼랑 끝에 선 한국축구를 독일월드컵 본선으로 진출시킨 1등 공신 박주영.
이들은 야구와 축구에서 최고 선수라는 점 외에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프로 선수로 데뷔할 때까지 별다른 부상이 없었다는 점이 그것이다. 조금만 기량이 뛰어나면 혹사를 당하는 국내 학원 스포츠 환경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큰 부상이 없이 보냈기에 오늘날의 박찬호와 박주영은 존재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스포츠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문화를 갖고 있다. 바로 기량이나 체력보다 투혼을 앞세우는 전통이다. 선수들에게 요구되는 투혼은 전장에 나서는 장수의 그것과 닮아있다. '지면 죽는다'는 비장한 각오 하나로 세계 무대에서 체면을 유지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거나 투기종목에서 세계 챔피언이 되었을 때 전 국민이 하나같이 투혼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하지 않았던가.
'투혼'은 스포츠 후진국이었던 과거 몇십 년 동안 체격 조건이나 기량이 뛰어난 외국선수들을 상대하는 우리 선수들의 유일한 무기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올림픽 10위권과 월드컵 4강이라는 스포츠 강국이 된 요즘에도 투혼은 우리의 스포츠 문화를 지배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문화가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오히려 더 많다는 데 있다. 무모한 투혼 문화는 유능한 선수들을 부상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조기 은퇴의 길로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부상이 있어도 웬만해선 연습이나 경기에 빠질 수 없다. 제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고 이름난 스타급 선수라도 감독이 "뛸 수 있겠느냐"라고 물을 때 "못 뛰겠다"라고 얘기할 수 있는 선수는 드물다. 부상을 참고 뛰는 투혼이 미덕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 때문이다. 또 부상을 피하기 위해 소극적으로 플레이를 하다가는 감독은 물론 관중들로부터 '몸을 사린다'라는 호된 질책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선수들은 몸이 아파도 이를 악물고 연습과 시합을 하면서 부상을 키우게 되는 것이다.
선수에게 부상이 생기면 쉬어야 하고 경기에 복귀해도 다시 다치지 않을 만큼의 몸을 만들 때까지 재활 훈련을 받는 것이 정석이다. 필자는 스포츠클리닉에서 재활 훈련 중인 선수까지 불러내 무리하게 연습을 시키거나 경기에 출전시키려는 코칭스태프를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아무리 선수가 부족하고 눈앞의 시합이 중요하다 해도 선수의 장래보다 더 중요한가. 부상한 선수가 재활에 실패하면 선수 생명은 끝이다. 장래가 유망한 학원 스포츠 선수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투혼의 스포츠 문화가 제2, 제3의 박찬호와 박주영으로 성장할 선수를 망가뜨리는 소탐대실의 과오를 정당화시키고 있지 않은지 반성할 시점이다.
이종균(운동사'닥터굿스포츠클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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