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입원실 입구에 심우순(80) 할머니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두 번의 뇌출혈로 쓰러진 막내아들과 지난달 말 간질, 발작으로 갑자기 의식을 잃은 손녀딸이 같은 병실에 나란히 누워 있기 때문. 두 침대 사이에서 아들의 똥오줌을 받아내면서도 온 힘을 다 쏟아 키웠던 손녀의 이마를 연방 쓰다듬었다.
"제발 이 두 사람 좀 살려달라." 자신의 핏줄들의 손을 꼭 부여잡은 할머니의 울부짖음이 애처로웠다.
할머니의 막내며느리는 16년 전 집을 나갔다.
일하던 음식점에서 만난 남자와 바람이 나 네살배기, 두살배기 딸을 버리고 떠났다.
자는 애들을 좀 봐달라고 부탁했던 며느리는 며칠, 몇 달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막내아들은 아내를 찾아 전국을 헤매며 돌아다녔다.
"못난 놈, 저 싫다고 떠난 여편네 뭐가 좋다고…못난 놈" 야단을 쳐도 소용없었다.
강원도 강릉의 아내 고향집 앞에서 3개월 동안 하숙까지 하며 아내를 기다린 철없는(?) 자식이었다.
거의 1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아들은 말로 다 못할 정도로 처참하게 변해있었다.
못하던 술을 들이켜야만 잠드는 버릇에다 정신까지 오락가락하는 모습이 자신의 가슴을 후벼팠다고 한다.
"애미 생각난다며 두 손녀딸을 고아원에 데려가자고 합디다.
술만 취하면 울고 자빠져서 보고싶다고, 찾아낼 거라고 고함고함 지르다가 지쳐 쓰러져 자고… 다리 밑에 살아도 우리가 키워야제 하면서 둘이 부둥켜안고 어찌나 울었는지…."
일용직을 전전하던 아들은 결국 6년 전 뇌출혈로 쓰러졌다.
어느 날 아침 깨어보니 아들은 사지를 바들바들 떨며 입이 귀에 걸려 왼쪽 몸이 마비돼 있었다.
병실에 누워있던 동생을 위해 큰 형은 집을 팔았다.
막내를 보다 못한 할아버지는 화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고등학교에 올라간 손녀가 어느 날 학교를 그만 뒀다고 하대요. 집이 이 지경인데 배우는게 무슨 소용있느냐며 자기도 돈 벌어서 아빠 살리겠다고 하면서 집을 나갔지요. 공장에서 일도 하고 닭도 잡으러 다니고 하다가 결국 저 지경이 됐는데…."
이 사회는 엄마 없는 설움에 아빠까지 잃고 싶지 않았던 소녀를 따뜻하게 받아주지 않았다.
직물공장에서도 못 배운 자는 쓸모없었다는 것이다
지난달 말 손녀는 눈을 뒤집고 발작을 일으켰다.
"할머니 내가 왜 이래? 내가 왜 이래?"하며 눈을 까집고 거품을 물던 손녀딸은 결국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실려왔다.
"맏이라서 그런지 말없이 점잖고, 속깊은 아이인데 무슨 죄를 졌다고… 하늘도 참 무심하시지."
결국 모아둔 돈 한푼 없이 두 피붙이를 같은 병원에 눕혔다.
기초생활수급권자로 동사무소에서 나오는 40여만 원이 생활비의 전부. 입원한 지 3주 만에 병원비만 200만 원이 밀렸다.
막내손녀도 학교를 그만뒀다.
집에서 유일하게 돈 벌 수 있는 사람은 자기라며 지금도 몇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병원비를 모으고 있단다.
할머니는 누워있는 손녀의 머리를 두 갈래로 땋으며 한숨을 토해낸다.
"우리 네 식구 어디 뭉쳐서 아프지 않고 살게만 해 준다면 내 죽어도 여한이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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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
사진 : 한 병실에 누워있는 막내 아들과 손녀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눈길이 너무나 애처롭다. 이채근기자 minch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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