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빨간 마후라'

어느 나라 공군에도 거추장스럽게 목에 머플러를 두르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유독 한국 공군만 빨간 머플러가 마치 제식 복장처럼 돼 있다. 초대 공군참모총장 김정렬 장군의 동생인 김영환 장군이 그 효시다. 그가 비행단장 부임 직전, 비행복에 머플러가 없어 허전하던 참에 형수에게 천을 달라고 하자 마땅한 천이 없어 치마를 만들려고 장만했던 빨간 천을 줬다. 김 장군은 그 천을 적당한 크기로 찢어 목에 둘렀다. 그가 부임하자 멋져 보여 비행단 주변의 옷감집은 빨간 천이 동날 정도였다.

◇ 그 이후 지금까지도 초등비행훈련을 마치면 수료식 때 참모총장이 직접 빨간 머플러를 목에 걸어주는 게 전통처럼 이어져 공군 조종사의 상징이 됐다. 1964년 공군 전투기가 하늘을 비행하는 모습과 빨간 머플러가 컬러 필름에 의해 관객을 압도한 영화 '빨간 마후라'(감독 신상옥, 주연 신영균 최무룡)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선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 영화 '빨간 마후라'의 실제 주인공 유치곤(兪致坤'1927~1965) 장군을 기리는 호국기념관이 어제 대구시 달성군 유가면 양리 비슬산 입구에 개관됐다. 달성군이 국비 등 14억 원을 들여 그의 고향 1천300여 평 터에 세워진 이 기념관은 외부에 그의 동상과 전투기 두 대가 전시되고, 내부엔 공군사'전투장비'한국전쟁과 안보 관련 자료 등이 전시됐다.

◇ 유 장군은 6'25전쟁이 일어난 이듬해(1951년) 소위로 임관, 그해 10월 F-51 전투기 조종사로 첫 출격했다. 그는 이 전쟁 때 무려 203차례의 출격으로 을지무공훈장(3회)'충무무공훈장(3회)'미국비행훈장(4회) 등을 받았다. 특히 1952년 유엔군이 500여 차례 공격으로도 못 부순 평양 부근 승호리 철교를 초저공비행으로 폭파한 신화를 남겼다. 1965년 대구비행장에서 과로로 순직, 대령에서 준장으로 추서됐었다.

◇ 그의 삶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영화 '빨간 마후라'는 짙은 감동과 함께 전쟁 영웅을 되새기게 했으며, 이번 기념관 건립은 그 신화를 다시 반추하게 한다. 그의 아들 고 유용석(공사 26기) 소령 역시 1982년 제주도서 훈련 중 순직해 대를 이은 '빨간 마후라'였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의 아들도 '하늘에서 살다 하늘에서 죽고 싶다'는 일기를 남겼지만, 하늘의 사나이 신화가 길이 빛나기를….

이태수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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