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간질환자의 죽음 열흘간 아무도 몰라

14일 오전 8시쯤 달서구 주택가 2층 단칸방에서 40대 남자의 시신이 발견됐다. 숨을 거둔 지 열흘이 넘어서야 발견된 사람은 이곳에 세들어 사는 은모(46)씨. 그나마 인근 슈퍼마켓 주인(48)이 은씨 집 창문을 통해 악취가 새어나오고, 파리가 들끓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겨 경찰에 신고한 덕분에 그의 처참한 죽음이 밖으로 알려지게 됐다.

경찰이 은씨 집을 찾았을 때 이미 시체는 심하게 부패된 상태였고, 방안에는 먹을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싱크대에는 한동안 음식물을 만든 흔적조차 없었다.

경찰은 간질환자였던 그가 방안에서 굶주리다 못해 발작을 일으켰고, 결국 숨을 거뒀지만 누구 하나 그를 찾거나 돌봐줄 사람이 없어 열흘간 방치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은씨는 말 그대로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동사무소는 매월 생활비 20여만 원을 통장으로 보내줬지만 실제로 그가 어떻게 사는 지, 어디가 아픈지 일일이 확인하지 못했다.

인근 본동종합사회복지관 관계자는 "은씨가 숨진 채 발견된 동네는 현실적으로 복지사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버려진 주택가'나 다름없었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이웃들 역시 무관심했다. 그가 살고 있던 집은 주인이 함께 살지 않는 곳. 때문에 누가 살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빈 집이나 다름없었다. 만약 악취가 새어나오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오랫동안 은씨의 죽음이 알려지지도 않은 채 방치됐을지 짐작하기도 어려운 상황.

한때 은씨는 아내와 함께 딸까지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몄다. 하지만 가끔씩 발병하는 간질증세로 인해 10년 전 이혼한 뒤 외로운 인생길에 접어들었다.

가끔 발작을 일으켜도 아무도 돌봐줄 사람이 없었던 것. 그래도 그는 용기를 잃지 않았다. 식당에서 일하며 번 돈으로 끼니를 때우고 며칠씩 막노동을 해 생계를 꾸려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웃들도 은씨의 죽음은 예고된 것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보름쯤 전 그는 새벽에 거리로 뛰쳐나와 '불이야! 불이 났다!'고 외치는가 하면, 승용차를 보고 '소방차가 왔다!'고 박수를 치는 등 평소와 달리 정신질환자처럼 돌아다녔다. 또 슈퍼마켓에 들어가 라면을 갖고 나와 길에서 아무에게나 나눠주는 등 해괴한 일을 저질렀던 것.

그러나 아무도 그를 정신병원이나 인근 요양원으로 데려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는 '이웃'이라기보다는 '동네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일까.

권성훈기자 cdro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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