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내위해 콩팥 내놓은 '황혼의 사랑'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나이에 병든 아내를 위해 선뜻 자신의 콩팥을 내놓을 수 있는 남편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16일 오전 경북대 병원에서 만난 이인혁(69.대구시 북구 대현동)씨는 긴 터널을 빠져 나온 듯 후련하고 유쾌한 표정을 보였다. 그의 아내 정정수(69)씨는 다소 지쳐 보였지만 백발의 남편에게 따스한 미소로 대했다.

이씨는 이달 초 만성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아내에게 왼쪽 콩팥을 떼 주는 신장 이식수술을 받았다. 10여년에 걸친 투병으로 만신창이가 된 정씨의 몸은 남편의 생명을 나눠 받고 소생의 온기를 얻었다. 이들 부부는 이날 수술 경과를 보기 위해 병원에 들른 길이었다.

정씨에게 만성신부전증의 고통이 시작된 것은 지난 1994년. 지루한 약물투여와 통원치료에도 몸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급기야 지난해 12월 말 심각한 어지럼증으로 병원에 입원, 고통스런 투석치료에 들어갔다. 온 몸의 피를 뽑아 돌리는 모습에 남편의 굵은 주름 이 젖어들었다.

그런 이씨에게 귀가 번쩍 트이는 희소식이 들린 것은 4월 무렵. 장기이식을 받으려면 무한정 기다려야 하는데 자신과 아내의 혈액형이 달라 자신의 콩팥을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어도 할 수 없다고 체념하던 참이었다. 그러나 실제는 자신의 혈액형이 O형이어서 장기제공이 가능했던 것. 이씨는 지체 없이 의료진에 매달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의료진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식 수술을 하기에 너무 노령이었기 때문. 같은 병실의 환자와 가족들도 '한 사람이라도 건강해야 한다', '너무 위험하다'며 이씨를 만류했다.

"아내 없이 나 혼자 건강하게 살아봐야 뭐합니까? 콩팥 아니라 더 한 것도 줘야지요".

이씨의 간곡한 요청에 마침내 수술이 성사됐고 결과는 예상보다 좋았다. 이씨는 수술 다음날 기력을 회복했고 아내의 회복실 문 밖을 서성이며 마른 침을 삼켰다. 3일만에 병실을 나선 아내는 주름 투성이의 남편 손을 잡고서 '고맙다'고 울먹였다.

수술을 맡은 김용림 신장내과 의사는 보기 드문 일이라며 이씨 부부의 각별한 사랑을 추켜세웠다. 그는 "부모가 자식을 위해 고령의 나이를 무릅쓰고 장기를 제공하는 사례는 있었어도 노부부간에 장기이식은 보기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슬하 5남매를 모두 혼인시켰다는 이씨 부부는 새로 받은 여생을 행복하게 꾸리는 일에 부풀어 있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사진 : 동갑나기 아내를 위해 자신의 콩팥을 떼 내 준 이인혁씨가 부인 정정수씨의 손을 잡고 환하게 웃으며 남다른 부부애를 보여주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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