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칼럼-금융도 색깔론으로 승부하자

"또 얼마나 퍼주기로 했을까?" "빨간 사람들이 모여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원…." "전쟁을 피하자면 햇볕정책 외의 대안은 없지 않소." "북한도 주권국가로서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것인데…."

통일부 장관이 김정일 위원장과 면담한 후 필자가 즐겨 찾는 한 스포츠센터에서 땀 냄새와 함께 귓전을 친 말의 일단이다. 우리는 유난히 색깔론과 친하게 지내오고 있다.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선거철이면 단골메뉴인 지방색도 만만치 않다. 이와 같은 사상색, 지방색은 가히 자극적이고 폭발적이다. 몇 마디 말로 선거결과나 여론의 향배를 뒤집을 정도임이 이미 입증된 바 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금융업의 경우 은행, 보험, 증권업 모두 기존의 고유 사업인 결제, 보험인수, 위탁매매를 뛰어넘는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아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국내 많은 금융회사들이 상품, 채널, 시스템 면에서 의미 있는 색깔 차이를 내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한 금융사가 신상품을 내놓으면 유사한 상품이 줄을 잇는다. 새로운 판매채널이 허용되기 무섭게 유행처럼 시장을 물들인다.

금융서비스에 대해 선호도가 뚜렷한 금융 고객을 상정해 보자. 모든 금융회사가 그를 만족시키거나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둘 중의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저마다 빨강, 파랑, 노랑, 초록의 독자적인 입간판을 가진다고 차별화한 색깔을 낼 수는 없는 일이다.

금융회사들이 제각각 색깔론으로 무장, 진검 승부를 펼칠 때, 동북아 금융허브의 길도 열릴 것으로 본다. 동질화되어가는 금융산업에서 색깔 있는 금융회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4대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고 본다.

첫째, 쏠림 현상의 유혹을 떨칠 강력한 의지와 실천력이 필요하다. 나름대로의 비전과 전략의 틀에서 깊이 고민하지 않고 그저 경쟁사, 선두회사, 글로벌 선진사를 모방하는 경우가 많다. 차별화하지 않은 서비스와 전략으로 가격경쟁에만 몰두하거나, 뚜렷한 목표시장 없이 확장경쟁에 몰두하다가 레드오션(Red Ocean)에서 익사하는 금융회사들이 더 이상 없기를 바란다.

둘째, 자원의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회사 내의 핵심역량을 찾아내 이를 더욱 강화, 발전시켜야 한다. 선택된 한두 가지 핵심역량에 자원을 집중하는 과정에서 사내 오해나 저항에 유의해야 한다. 선택되지 않은 영역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된 핵심역량의 강화를 통하여 오히려 지원하게 되는 효과가 있음을 이해시켜야 한다. 핵심역량 강화를 통한 사내 시너지 극대화를 노리는 것이다.

셋째, 뚜렷한 색깔을 내기 위한 조직문화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획일화한 인재상을 지향하는 조직 풍토는 금물이다. 저마다 다양한 색깔을 내면서 전사적으로 조화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의 역량 이상으로 성과가 발휘되는 조직이 있는가 하면 역량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는 조직도 있다. 다양한 인재상이 인정되고 상호 존중과 신뢰가 싹트는 조직 문화와 풍토를 조성하는 것이 색깔 있는 금융회사를 만드는 기반이 될 것이다.

넷째, 전략적 선택에 따라 회사에 성공적으로 색을 입히기 위하여 치밀한 계획에 입각한 변화관리의 실행이 필요하다. 무슨 색을 선택할 것인지에 관하여는 물론 이에 앞서서 왜, 어떻게 색깔을 입히게 되는지에 관해 조직 구성원들의 폭넓은 이해와 동참을 이끌어내어야 한다. 즉, 다양한 부서와 직위의 구성원들이 색깔 있는 회사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관여하고 참여하며, 궁극적으로는 그들 스스로 색깔 입히는 일을 주도하게 될 때 색깔 있는 회사가 만들어진다.

요컨대, 남을 따라 하는 유혹 떨치기, 선택된 핵심역량에 집중하기, 다양한 재능이 인정받는 조직문화 만들기, 구성원의 주체적 참여를 유도하는 치밀한 변화관리 등 4대 요소를 모두 갖추었을 때 색깔 있는 금융회사가 된다.

우리 정치에서 색깔론이 쓸모없게 되기를, 금융산업에서는 색깔론이 유용하게 되기를 바란다. 정치와 금융산업이 색깔론을 상호 수출입함으로써 동반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최명주 교보증권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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