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황혼 이혼'

옛날 우리나라서는 남성의 이혼 권리만 컸다. 조선시대엔 '칠거지악(七去之惡)'이란 일곱 가지 항목의 부인 쫓아내기 명분이 있었다. 시부모를 잘 못 모시거나 아들을 못 낳을 때, 질투가 심한 경우 등엔 그랬다. 갈 곳 없는 부인은 못 쫓아내는 등 '삼불거(三不去)'라는 여성 보호 장치도 있었지만,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고종 때 아들을 못 낳거나 질투가 심한 부분이 빠져 '오거(五去)로 줄고, 자식이 있으면 못 쫓아내게 하는 항목이 추가돼 '사불거(四不去)'가 되기도 했으나 그야말로 아득한 옛이야기다.

◇ 서양에는 결혼을 두고 연령대에 따라 느끼거나 의미를 부여하는 빛깔이 다르다는 얘기가 있다. 20대엔 사랑으로 맺어지지만 30대는 노력으로 지탱하며, 40대는 인내로 꾸려간다고 한다. 50대는 체념으로 살아가며, 60대 이후에는 감사하게 된다는 게 그 내용이다. 그러나 지금도 과연 유효한지 모르겠으며, 우리도 그 사정은 거의 마찬가지일 것으로 보인다.

◇ 결혼한 지 20년이 넘는 부부가 헤어지는 이른바 '황혼 이혼'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런 부부는 지난해의 이혼 부부 다섯 쌍 가운데 한 쌍 정도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통계청이 어제(21일)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이혼 건수 가운데 20년 이상이 된 부부 비율은 18.3%에 이른다. 23년 전인 1981년의 4.8%보다 무려 3.8배나 늘어난 셈이다.

◇ 이혼 사유가 경제 문제, 가족 간 불화, 배우자 부정 등 어느 쪽이든 1995년까지 만도 8.1%이던 것이 2000년 14.3%, 2003년 17.8%로 느는 등 근년 들어 속도가 계속 붙고 있는 추세다. 지난해는 재혼 비율도 남성 18.2%. 여성 20.4%로 1972년에 비해 3, 7배씩 증가했으며, 경제 문제나 가족 간 불화는 줄어든 반면 성격 차이 때문에 이혼하는 경우가 절반이나 차지할 정도로 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

◇ 사실 과거의 여성들에겐 굴종이 미덕이고 희생이 의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세기 전만 하더라도 동등한 인간으로서의 대우조차 불온한 처사로 여겨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이 너무 달라졌다는 데 문제가 없지는 않아 보인다. 결혼도 협상과 적응의 연속이라면 참고 서로 감싸는 미덕이 묘약일 수 있다. 성격 차이가 심하다고 때늦게 갈라선다고 해서 행복해진다는 보장은 없을 터이므로….

이태수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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