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용사로 목숨 걸고 싸웠는데 군번기록이 없어 훈장을 못 받고, 국군 포로로 잡혀간 사람을 전사자라고 유족을 속이는 이런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참전용사인 아버지의 공로를 작고한 지 18년만에야 국가로부터 인정받았다는 박철수(50.대구시 수성구 만촌동)씨는 22일 부친의 병적기록부, 가족 주민등록초본 등 수북히 쌓인 각종 서류와 훈장을 들어 보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우연하게도 장인과 처 삼촌들도 6.25전쟁에 참전했다 두 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박씨는 고인들의 공을 인정받기 위해 국가기관을 상대로 혼자 벌인 2~3년간의 외로운 싸움을 설명하며 울분을 토했다.
박씨의 아버지는 1950년 9월 의무선임하사로 입대, 이듬해 12월 북방전투지역에서 소속 부대가 중공군에 포위되자 적의 포위망을 뚫고 연대를 탈출시킨 공로자. 박씨는 그러나 1986년 아버지가 폐암으로 사망한 뒤 국가유공자 신청을 했지만 병적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동사무소의 행정착오로 주민등록부를 옮겨 적는 과정에서 군번 등이 빠진 것.
그는 2003년에야 군 전산기록을 요청, 아버지의 군번을 알아냈고 동사무소 창고에서 병적이 기록된 옛 주민등록부를 찾아내 부친을 국가유공자로 상신, 올 1월 무성화랑무공훈장을 받을 수 있었다. 그 세월동안 박씨는 초등학교를 겨우 마치는 등 정부의 각종 지원에서 외면당했다.
아버지의 행적을 밝혀낸 그는 용기를 얻어 장인과 처 삼촌들의 공적도 밝혀내기 위해 다시 육군본부와 국방부, 보훈청 등 국가기관과의 힘겨운 줄다리기에 들어갔다.
장인 문일범(83.청도)씨는 평양전투에서 허리 관통상을 입고 후송도중 열차에서 뛰어내려 고향 청도에 몸을 숨겼다는 것. 탈영사실이 두려워 상이용사 신청을 입 밖에도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위 도움으로 지난해 보훈청에 상이용사로 등록된 장인은 "50년 한을 풀었다"며 울먹였다는 것.
유골로 돌아온 둘째 처삼촌과 달리 막내 처삼촌은 '52년 11월 6일 전사'라는 기록이외에 전사장소도 실종여부도 알 수 없었다. 국립묘지에 위패가 안장된 것도 최근에야 알았다.
박씨는 그러나 막내 처삼촌이 전사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국군포로로 북한에 잡혀가 노역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해들었다며 중국에 있는 친척을 통해 생사여부를 추적중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참전 용사들의 후손들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국가는 어디에 있었느냐"고 원망했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사진:국가기관을 상대로 한 수 년간의 줄다리기끝에 부친과 처 삼촌의 전쟁 유공을 밝혀낸 박철수(50)씨가 병적기록 등을 보여주며 울분을 토로하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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