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상 밖 사람들-김천 구성면 저익촌 장수마을

시간이 멈춘 山村 "일흔은 여기서 젊은이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김진용(90) 할아버지가 네살 위 당숙 난규 할아버지에게 "한 대 피우겠다"고 아뢴다.

돌아앉아 담뱃불에 불을 붙이는 모습이 도저히 더는 못 참겠다는 눈치다.

곰방대를 연신 물고 다니는 소문난 골초인 김진길(86) 할아버지는 돌아앉아 피울 형편도 안 되는 모양이다.

그냥 입맛만 쩝쩝 다시며 참는다.

뼈대 있는 마을!

김천시 구성면 상거1리 저익(沮溺)촌 마을. 덕대산 줄기 4부 능선, 해발 260m 산비탈에 자리잡은 탓에 전답도 다락, 집들도 모두 다락집이다.

경사도가 30%는 됨직한 마을 길을 따라 맨꼭대기 집까지 오르는 게 마치 등산하는 기분이다.

24가구 34명이 모여 사는 이곳은 구순을 넘긴 부부 2쌍을 비롯해 팔순 이상이 13명이나 되는 소문난 장수마을. 도시생활을 접고 윗대 고향을 찾아 들어온 50대 부부 2쌍을 빼면 주민 30명의 평균 연령은 80대 초반. 그래서 이곳에선 70대 노인들이 젊은이, 새댁으로 통한다.

'어르신들의 장수비결은 뭘까? 평탄한 땅도 많았을텐데 굳이 산비탈에다 집을 지은 이유는 뭘까?'. 마을 김상한(55)·김동숙(51) 부부 집에서 꼬리를 무는 궁금증에 자문자답하다 절로 깊은 잠에 빠졌다.

저익촌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산촌의 아침은 일찍부터 시작된다.

새벽 5시, 벌써 마을에선 인기척이 들린다.

6시쯤 되자 김진길 할아버지가 지게를 지고 소꼴을 베러 나간다.

비탈길을 저벅저벅 걷는 모습이 60대라고 해도 족히 믿겠다.

아침 7시, 마을의 아침 식사가 거의 끝난다.

최고령인 김난규(94)·최차수(85)씨 부부의 이날 아침은 죽. 소식(小食)이어서 밥은 3분의 1 공기면 족하다.

김진용·이기순(91·여)씨 부부 역시 식사량이 적다.

이 할머니는 아예 아침에 지은 밥으로 저녁까지 해결한다.

김진용 할아버지는 싱거운 음식을 즐긴다.

마을 뒷산에서 나는 자두·호두·앵두·감·밤과 송이·능이버섯, 산나물 등이 주된 간식이다.

2년 전 금강혼식(金剛婚式)을 치른 이기순 할머니는 올해 결혼 73년차 신부. 김 할아버지가 "졸리면 자고 배 고프면 먹고 적당히 즐기듯 일하며 마음 편히 갖는 게 오래 사는 비결"이라고 하자 "몸서리 나는 생활, 뭐 이렇게 살다가 죽는 거지 뭐…"하고 되받는다.

아침식사를 끝낸 뒤 김봉선(80) 할머니 등 10여 명의 할머니들이 동네 어귀로 모이자 경운기 2대가 이들을 모시러 온다.

인근 마을로 양파 캐러 가는 날이다.

할머니들의 품일은 몇 십 년째 계속된 일로 하루 3만 원의 품삯을 받는다.

8년전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사는 김 할머니는 "농촌에 일손이 워낙 달려 관두고 싶어도 그러기 힘든 실정"이라고 했다.

할머니들이 떠난 뒤 김난규, 김진용 할아버지는 삽과 호미를 챙겨 논밭으로 나간다.

이곳에선 그냥 놀고 먹는 노인은 단 한 명도 없다.

김진용 할아버지는 "유일한 소일거리가 농사일이기도 해 즐기듯 일을 한다"고 했다.

이렇게 모두 아침 일을 나가면 마을은 점심시간까지 적막강산이다.

이 마을 노부부들은 모두 슬하에 5, 6남매를 뒀다.

자식들은 서울·대구·김천 등지에 나가 산다.

제사도 자식들에게 넘겨준 지 오래인지라 명절때도 대부분은 역귀성을 한다.

이래저래 마을을 찾는 젊은이들이 갈수록 줄어 주민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김동규(81) 할아버지는 "60, 70년대만 해도 60가구나 됐는데 지금은 늦게 들어온 젊은 사람들을 빼면 늙은이들뿐이어서 자손대대로 살아온 마을이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11마지기 농사를 짓는 김수영(74) 할아버지도 "내 밑으로 3, 4명밖에 없어 마을에선 아직 '젊은이'소리를 듣는다"라며 "일이 힘들어도 꾀 피울 형편도 못 된다"고 했다.

오후 7시, 품삯일과 논밭일을 나갔던 주민들이 하나 둘씩 돌아오면서 마을은 생기를 되찾는다.

저녁을 준비한 김진길 할아버지는 "반찬이 없다"며 연신 걱정이다.

돼지 목살구이를 곁들인 무공해 채소들은 꿀맛이다.

노인들의 주량도 만만찮아 김동규 할아버지는 5일에 소주 1ℓ는 마신다고 너스레를 떤다.

"야야! 귀찮게 뭐하러 사진 찍을라 카노"라며 사진촬영을 거부(?)하는 어르신들을 설득하기 위해 급히 사온 돼지고기 5근과 소주 대병 2병이 분위기를 돋운다.

"김장연(51)씨는 동네의 '맥가이버'야. 선조 고향이 여기라서 한 20년 전쯤 들어와 농사를 짓는데 전기, 수도, 농기계 등 고장난 건 못 고치는 게 없어. 또 김상한씨는 얼마나 기특한 지 몰라. 젊은 사람이 서울에서 한달에 열흘 정도씩 내려와 2천평 밭농사를 짓는데 농사를 지으려고 농업전문대학을 3년이나 다녔다지 아마."

오랜만에 주민 모두 모여 웃음꽃을 피운 저익촌에 밤은 일찍 찾아왔다.

밤 9시쯤 한 집 두 집 불이 꺼지더니 이내 인기척이 끊긴다.

깊은 잠에 빠진 산촌을 깨울세라 달빛을 벗삼아 조심조심 내려오는 동안 나홀로 객(客)이었다.▧저익촌 장수마을은

1524년 단종 복위 모의 주역인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 선생의 증손 김숙련(金淑蓮) 선생이 고향인 충북 옥천군 이원면에서 야반도주해 이곳에 정착하면서 이들의 삶이 시작됐다. 지금도 마을 주민 모두는 백촌선생 후손들로 김녕(金寧) 김씨 일가들이다.

김숙련 선생이 세상사람들과 접촉을 끊는 삶을 살다보니 마을도 산속에다 자리잡았다. 최근에 지은 집들은 도로가에서 육안으로 보이지만 원래 집들은 도로에서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산을 깎아 집들을 지은 탓에 주민들은 등산하듯 집과 전답을 오르내렸다. 이 점이 장수의 한 비결이기도 하다.

그러나 주민들은 이 점이 건강에 도움은 됐겠지만 대부분 노인들의 허리를 꼬부랑으로 만든 원인이라고 말한다. 오르막을 좀 더 쉽게 오르기위해 허리를 매번 굽히다보니 자연 꼬부랑 할아버지'할머니가 됐다는 것.

저익(沮溺)촌이란 마을 이름의 유래에 대해 김천시사(史)는 논어 제18편 미자(微子)에 나오는 은자(隱者'속세를 떠나 초야에 묻혀 사는 사람)이면서 공자 제자인 장저(長沮)와 걸익(桀溺) 두 사람의 이름 마지막 한자씩을 따서 저익이라 부른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현재 재실로 이용되는 마을 내의 승유제(承裕齊)는 주민들을 교육하는 서당 역할을 톡톡히 해 은닉생활에도 불구, 그동안 많은 인재들을 배출했다.

김천·이창희기자 lch888@imaeil.com사진: 경북 김천시 구성면 상거1리 저익촌 마을에 사는 노부부들이 동네 냇가를 찾아 물고기를 잡으며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왼쪽부터 김진용(90)·이기순(91)부부, 김종선(77)·김동규(81)부부, 최차수(85)·김난규(94)부부, 김진길(86)·김금순(72)부부. 정운철기자 wo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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