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아빠가 부지런하면 가족이 즐겁다

'떠나면 고생길, 안 떠나면 바가지.'

일찌감치 주 5일 근무의 혜택(?)을 입은 회사원 이준철(37·대구시 북구 침산동)씨. '주 5일제 선배'랍시고 건넨 한마디다. 아예 한술 더 떠서 "돈 깨지고 몸 버리지(?) 않으려면 조심하라"며 겁까지 준다. 닷새 일하고 이틀 쉬는데 뭐가 걱정이람. 하지만 이 협박성 충고의 진의를 파악하는 데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지난주 7살 딸이 다니는 유치원에서 가정통신문이 날아왔다. '아빠와 함께 하는 갯벌 체험'. 주말 이틀을 쉬니 별의별 프로그램이 다 생기는구나. 하지만 걱정할 게 무어랴. 준비물 꼼꼼히 적혀 있겠다, 지정된 버스에 몸만 실으면 끝. 평소 주말마다 소파에 기생하는 '둥지족'으로 변신하는 아빠의 모습을 탈바꿈할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이날 체험행사에 참가한 유치원생은 100여명. 둥지족 출신 아빠들 70여명이 함께 했다. 나머지는 엄마가 동행.'갯벌 체험'의 최종 목적지는 경남 남해군이다. 구마고속도로의 내서분기점에서 남해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진주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남해로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쯤에서 초보 가족 체험기를 쓰는 필자의 한마디. '아빠가 부지런하면 온 가족이 즐겁다.' 명색이 갯벌 체험을 떠나는데 서해와 남해 갯벌이 어떻게 다른지, 갯벌에는 어떤 생물이 사는지, 아니면 최소한 갯벌에 가면 어떤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는지조차 들려줄 만한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차라리 출발을 미루는 편이 낫다. 참고로 이날 함께 한 아빠들 중 상당수가 모처럼 마련된 자녀와의 대화 시간을 포기한 채 전날 밤의 음주 후유증에 못이겨 버스에서 잠을 청했다. 특히나 승용차를 이용한 가족단위 나들이라면 철저한 사전 준비는 필수.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한번 '와! 우리 아빠 별걸 다 아네. 최고야'라는 찬사를 들어보겠는가.

3시간 남짓 달린 버스는 어느덧 남해대교를 가로질렀다. 첫 목적지는 충렬사.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얼이 깃든 곳이라는 거창한 설명이 유치원생들에게 통할 리가 없다. 그저 충렬사 앞 바다에 '조촐하게' 마련된 거북선 모형에 온통 눈길이 쏠렸다. 투박하기는 해도 어른 입장료 1천 원이 아깝지 않은 곳이니 한번쯤 둘러볼 만하다. 실제 모형 내부에는 갑옷을 입혀놓은 마네킹과 당시 전투 장비, 대포, 전투신호를 알리는 갖가지 연까지 진열돼 있어 초등학생 정도라면 눈이 휘둥그래질 만하다.

다음 코스는 흔히 '한국판 모세의 기적'으로 이름난 설천면 문항리. 갯벌 체험을 하는 최종 목적지다. 남해대교를 넘어선 뒤 500m 정도 남해읍 쪽으로 향하다가 지방도 1024번 설천면 방향 이정표에서 좌회전한 뒤 15분 가량 차를 타고 가면 문항마을에 도착한다. 이곳은 서해안처럼 진흙이 무릎까지 차오르는 '펄 갯벌'이 아니라 조개껍질과 모래가 주를 이루는 '모래 갯벌'이 뒤섞인 혼합 갯벌이다. 때문에 걸음걸이가 민첩하지 못한 유치원생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직접 바지락을 캐고 싶다면 호미나 모종삽, 여벌의 운동화, 두꺼운 양말, 목장갑 등을 준비해야 한다. 워낙 많은 관광객이 찾아와 바지락을 캐가기 때문에 한 웅큼 정도의 바지락이라면 모를까 양동이를 들고와 한 몫(?) 잡으려고 생각해선 곤란하다. 바지락이 없어서가 아니라 주민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가끔씩 채취한 바지락 무게를 달아서 1kg에 3천 원씩 받기도 한다. 입장료는 중학생 이상 2천 원, 어린이는 1천 원.

선크림을 잔뜩 발라준 뒤 딸과 함께 바지락 캐기에 나섰다. 이미 죽어서 진흙만 잔뜩 품고 있는 껍질만 보고도 "이야! 진짜 조개가 있네"라며 어쩔 줄 몰라했다. 어른 손 깊이 정도를 파헤치니 껍질을 악다문 바지락이 쏟아진다. 참고로 마을 앞 섬(상장도)으로 이어지는 물길이 열리는 시간을 사전에 물어본 뒤 도착시각을 조정해야 한다. 바지락 캐기를 끝낸 뒤 자녀 손을 잡고 섬을 한바퀴 산책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 문항마을 주차장 옆에 새로 마련된 간이 세족장을 이용하면 소금기와 진흙이 묻은 손과 신발을 씻어낼 수 있다. 주의할 점. 아직 문항마을엔 슈퍼마켓이 없다. 때문에 음식과 음료수는 사전에 준비해야 한다.

점심식사를 한 뒤 폐교를 활용한 '해오름예술촌'과 수령 350년이 넘은 울창한 나무들이 반원형 숲을 이룬 '물건방조어부림'을 둘러봤다. 특히 해안을 따라 1.5km에 느티나무, 이팝나무 등이 빽빽히 들어선 어부림에서는 '나무가 물을 마시는 소리'가 들린다. 맑은 날 나무둥치에 귀를 대면 아름드리 고목들의 뿌리가 힘껏 빨아들인 물이 줄기로, 잎으로 올라가는 소리가 들린다. 청진기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어차피 아이들에겐 나무의 소리를 듣는다는 그 자체가 색다른 경험. 다만 여름철에는 모기약이 필수품.

마지막으로 음식 소개. 남해에서 생태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주)자연이야기 조세윤씨는 "가급적 그곳에서 생산되는 먹을 거리를 그 지역의 물로 조리해 먹는 것이 가장 특별하다"며 "남해에선 갈치회, 멸치회, 남해한정식, 심층수 된장찌개 정도가 특별한 음식으로 꼽힌다"고 했다. 추천 식당은 미조 공주식당·삼현식당(갈치회, 멸치회), 남해읍 달궁식당·시골집·미담(남해한정식), 고현면 관음포 타운(심층수 된장찌개). 남해군청 홈페이지(www.namhae.go.kr)에 자세한 식당 정보가 나와있다.

오후 4시30분 바쁜 일정을 모두 마치고 대구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 졸음에 겨운 눈을 비비며 딸이 물었다. "아빠, 다음엔 어디에 갈거야?" 이 때 꿀 먹은 벙어리가 되지 않으려면 적잖이 인터넷을 뒤지고 전화통에 매달려야 할 것 같다. 천만다행으로 딸과 함께 한 첫 주말 체험이 단체여행이었기에 망정이지 자칫하면 정말 '돈 깨지고 몸 버릴 뻔' 했다.

김수용 기자 ks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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