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자서전 낸 고희의 국군포로 유경재·박진홍씨

"전후세대 이기적 모습 안타까워"

"전쟁의 참혹함을 경험 못한 손자세대들에게 당시의 참상을 전해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젊은이들이 우리 얘기에 귀 기울여 주기나 할까요?"

'6·25 당시 전쟁포로, 74세 동갑내기, 자서전 발간….'

6·25 전쟁에 참전, 국군포로로 끌려갔다 살아 돌아온 '역전의 용사'들이 반 백(半百)년의 세월을 넘어 자신들이 쓴 책이 인연이 돼 한자리에 만났다.

올 초 '삼수갑산에서 거제도까지'라는 자서전을 펴 낸 유경재(74·경북 청도)씨와 2001년 '6·25 국군포로체험기, 돌아온 패자'라는 책을 출간한 박진홍(74·대구 중구)씨. 6·25를 하루 앞둔 24일, 박씨의 정형외과 병원에서 만난 두 노병은 총 대신 연필을 든 사연을 시나브로 풀어냈다.

19세 되던 1950년 8월 학도병으로 자원입대, 38선을 넘어 백두산까지 진격했다는 유씨. 그 해 12월 강원도 원주역 인근 전투에서 지뢰 파편에 머리 부상을 입고 인민군에 잡혀 포로가 됐다.

살아 돌아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마음에도 없는 '해방전사(국군포로 출신 인민군)가 됐다.

옛 동료들에 총부리를 겨누기도 잠시. 51년 2월 이번에는 UN군 포로가 돼 거제도로 끌려가는 신세가 됐다.

유씨는 "38선을 넘나들며 두 번이나 포로가 돼야 했던 기구한 인생이 새삼 부끄러울 따름"이라고 회상했다.

박씨의 포로생활은 훨씬 더 길었다

당시 대구 의과대학(현 경북대 의대 전신) 학생이던 박씨는 홀어머니를 뒤로 한 채 학도병에 자원 입대했다.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밀려나며 부상당한 아군을 치료하면서 아비규환의 행군을 계속했다.

그러다 같은 해 11월 평안남도 덕천 전투에서 중공군에 잡혀 국군포로가 됐다.

북한지역 포로수용소를 이곳저곳 옮겨다녔던 그는 휴전협정이 체결된 53년 7월 중공군과의 포로교환이 이뤄지면서 33개월에 걸친 국군포로 생활을 끝냈다.

그는 "포로로 붙잡혀 총살당할 뻔하는 등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돌아온 영웅이 아닌 패자로 살아야했다"고 고개를 떨궜다.

두 사람은 옛 기억을 더듬으면서 한편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학도병으로 자원입대했다가 포로가 돼 온갖 고초를 겪은 자신들의 세대를 이해해 줄 사람이 있을까하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이런 자신들에게 책을 쓰도록 한 것은 총탄에 쓰러져간 이름 모를 전우들의 단말마였다.

두 노병은 최근 GP의 총기 난사사건에 대해 한 마디를 던졌다.

"전후세대들이 풍요에 젖어 인생의 인내와 고행을 잊고 나약하고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이 나라를 이만큼 지켜낸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들의 희생을 생각한다면 말입니다.

"

권성훈기자 cdro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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