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지촌 자전에세이 펴낸 김연자씨

"기지촌 여성들 희망·열정 들어볼래요"

기지촌 '양공주'에서 신학생으로, 다시 기지촌 운동가로. 몇 줄의 이력만으로 김연자의 파란만장한 삶을 줄여내기엔 역부족일 듯싶다. 김연자는 자전에세이 '아메리카 타운 왕언니, 죽기 오분 전까지 악을 쓰다'(삼인 펴냄)를 통해 스물 한 살때부터 25년동안 기지촌 성매매 현장에서 겪었던 삶의 질곡을 담담한 어투로 그려냈다.

"이 책은 양색시였던 한 여성의 과거 얘기만은 아닙니다. 사회 속에서 살면서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한 것들, 그 문제들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회한과 분노, 갈등을 돌아보고 스스로 깨닫고 치유한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녀가 매매춘의 수렁에 빠진 건 1963년. 기술을 배우겠다며 서울시립부녀보호소에 입소한 일이 계기가 됐다. 그녀는 이후 동두천, 군산, 송탄 기지촌 지역에서 미군을 상대했다. 그녀는 '꿀벌자치회' '자매회' 등 여성들의 자치 조직을 이끌며 기지촌 내의 부정부패를 고발하고 저항하는 일에 앞장섰다. 1988년 46세에 기지촌에서 나온 후에는 기지촌 여성들과 함께 천막과 쉼터에서 생활하며 신학 공부를 했고1992년 송탄에서 참사랑선교원을 꾸려 기지촌 여성과 혼혈아들을 위해 일했다.

저자의 삶에는 한국 현대사와 근대화가 긁고 지나간 생채기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가난한 모녀를 벼랑끝으로 몰아붙이는 전쟁과 아버지로 상징되는 자유당의 부패가 있고 상경한 소녀들을 버스 안내양으로 착취하는 내용에선 개발 시대의 그늘이 엿보인다. 미군을 위해 국가가 앞장서 만든 기지촌과 작은 외침도 빨갱이로 몰아가는 유신 시절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었던 어두운 그림자다.

김연자의 말투는 매끄럽거나 고상하지 않다. '빅 보이스(Big Voice)'라는 별명답게 거침없이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친척 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어린 시절의 상처, 홀어머니를 부양하며 스스로 감당해야했던 외로움과 분노를 솔직하게 고백한다. 또한 기지촌에서 동료들과 함께 울고 웃던 삶과 공동체를 꾸려 서로를 보듬었던 생명력, 절망과 고통을 견디며 피어난 기지촌 여성들의 희망과 열정의 세월을 담담한 어투로 들려준다.

이제 그의 나이 예순 셋. 그는 왜 기지촌을 떠나지 못하고 계속 남아 있을까. "여기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과 한 시대와 역사 속에서 그들의 삶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지금 이 나라 기지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계속 얘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직 이곳에 사람들이 남아있기 때문에 지금 기지촌에 있고 앞으로도 계속 살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기나긴 여행에서 제가 그나마 느낀게 하나 있습니다. 사회나 주변 환경이 나를 변화시키는 것보다는 내가 먼저 사회와 내 현실을 제대로 봐야만 변할 수 있다는 겁니다. 결국 그 모든 것에 맞설 사람은 자기입니다. 마음의 병을 치유할 사람도 자기 자신뿐입니다."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