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개인홈페이지 중 하나인 블로그를 통해서 자주 안부를 주고받던 사람 중에서 고향이 충북 제천인 이가 있다.
어느날 이 사람의 블로그에 들어가봤더니 '작약'에 대한 이야기가 올라와 있었다.
부모님이 살고 계신 제천은 5월과 6월이 되면 작약이 만발한다고 한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계속 달리다가 작약이 만발한 곳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곳이 제천이라는 것이다.
정말 제천에는 그렇게 많은 작약이 만발하는 걸까? 확인할 길은 없지만, 지금쯤이면 함박꽃이라고도 불리는 작약의 향기가 온 시가지를 뒤덮고 있겠다 싶었다.
아버지는 요령이 별로 없는 분이었다.
그래서 좋다고 사오는 물건치곤 변변한 것이 별로 없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꽃을 유난히 좋아했던 당신은 철마다 꽃을 자주 사들고 귀가하곤 하셨는데, 그중에서도 유난히 작약이나 목단 같은 꽃을 자주 사오셨다.
아마도 그 꽃들은 시골 아낙들이 시장에 들고 나와 파는 것이었기에 쉽게 살 수 있었고, 꽃이 크고 향기가 강해서 한번 보면 그냥 발길을 돌리기가 쉽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아버지께서 작약이나 꽃을 사온 날에는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가슴이 뭉클해진다.
따가운 초여름 햇살을 받아 뜨뜻해진 물에 담가둔 작약은 강렬한 꽃향기와 더불어 물비린내 같은 이상한 향기를 뿜어내는데, 그 냄새가 내게 이상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마치 온실이나 비닐하우스에 처음 들어갔을 때의 느낌같이…. 그런데 그것이 왜 그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남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아버지가 꽃도 사오시냐면서 낭만적인 분이라며 호들갑을 떤다.
하지만 아버지는 전형적인 경상도 양반이었다.
말씀도 별로 없고, 괜한 일에 불뚝성질만 내는, 그래서 자식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는 분이었다.
거기다 요령도 없는 양반이라, 작약이나 모란도 꼭 다 펴버린 것만 사오셨다.
꽃망울 진 것을 사오면 좀 더 오래 꽃을 볼 수 있다는 건 생각조차 못하셨다.
올해는 작약을 보지 못했다.
목단도 사진으로만 봤다.
목단이나 작약은 꽃집에서는 잘 팔지 않는 꽃이기에 꽃가게나 이따금 드나들 줄 아는 나에게 작약은, 영원히 아버지의 꽃이다.
대구MBC 구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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