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EBS 활용실태와 대비책

EBS 수능방송에 대한 부담을 하소연하는 학생들이 많다. 가뜩이나 여러 과목에 걸쳐 공부할 시간이 많지 않고 봐야 할 교재도 많은데, 수능방송을 볼 시간도 그 많은 교재를 볼 여유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EBS는 끊임없이 수능방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니 이러기도 저러기도 어렵다고 불만을 털어놓는다.

매일신문사가 고3생들의 EBS 수능방송 활용도를 조사한 것도 수험생들의 이런 갑갑증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는 데서 기획한 것이다. 수능시험 관계 기관들이 아무리 EBS 수능방송에 비중을 두려 해도 수험생들의 실질적인 활용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곤란한 일이다.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분석하고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는다면 사교육비 절감이라는 취지보다 더 큰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크다.

수험생 입장에선 다른 학생들이 EBS 수능방송을 어느 정도 활용하고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알아보고 지난해 수능 출제 경향, 올해 수능 출제 방향 등을 생각해 본다면 EBS 수능방송에 대한 부담도 덜 수 있을 것이다.

◇ 조사 결과는

대구의 남구와 달서구, 수성구 4개 고교 남녀 3학년생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아침이나 방과 후 자습 시간에 모든 교실에서 EBS 수능방송을 틀어주는 학교와 희망자만 특별실에서 시청하는 학교도 구분했다.

학생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일주일에 5시간 이상을 시청한다는 대답은 11%에 불과한 반면 전혀 시청하지 않는다는 학생은 35%나 됐다. 자율시청하는 학교의 경우 63%가 전혀 듣지 않는다고 했고 5시간 이상 듣는다는 학생은 3%에 그쳤다. 학교 관계자들은 모든 교실에서 방송을 틀어주는 학교의 경우 실제 방송수업을 집중해서 듣는 학생은 이보다 훨씬 적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1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모의고사에서 느낀 체감 반영도 조사 결과는 관계기관들의 주장이 무색할 정도로 나타났다. 반영도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는 학생이 3분의 2를 넘은 것. 출제 경향에 민감한 상위권 학생들조차 반영도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는 대답이 64%나 됐다. 이는 EBS 강의나 교재의 내용들이 여타 교재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의 방증이다.

앞으로 활용 방법에 대해 물어본 결과는 수험생들의 고충을 그대로 보여줬다. 방송이나 교재를 전혀 활용하지 않겠다는 응답은 6%에 불과했다. 대신 교재만 보겠다는 학생이 55%였다. 수능 출제에 직접 관련된다고 하니 문제집 한 권 더 푼다는 마음으로 수능방송 교재만 보겠다는 것이다. 특이한 것은 상위권 학생 가운데 전혀 활용하지 않겠다는 응답이 9%로 평균을 넘은 사실이다. 이는 굳이 EBS 강의나 교재를 보지 않아도 수능 대비에 문제가 없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 지난해 수능 출제는

2005학년도 수능시험이 치러진 후 EBS 측은 수능강의와 교재에서 80% 이상 반영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EBS 홈페이지에는 '아전인수식 해석'이라며 반박하는 글이 쏟아졌다. 한 조사에서는 체감 반영률이 20% 이하라는 응답이 절반 가까이 됐다. 한 입시기관의 조사에서는 수험생의 70% 이상이 수능방송이나 교재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대표적으로 언어영역의 경우 EBS는 현대수필을 뺀 모든 문학 제재가 EBS 교재에서 다뤘던 범위에서 출제됐으며 생소한 문제로 꼽힌 '은행나무'는 EBS 교재에만 있는 등 60문항 중 52문항이 반영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학원가에서는 EBS 교재가 워낙 방대해 대부분의 문학 작품을 다루는데 이를 두고 반영됐다거나 맞췄다고 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많았다. '은행나무' 역시 다른 문학 교과서에 일부 내용이 실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어에 대해서도 EBS는 50문항 중 41문항이 EBS 교재에 실린 지문과 거의 동일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똑같은 지문과 똑같은 유형의 문제가 나오지 않는 이상 적중했다고 보기 힘들다는 비판이 높았다. 대부분의 참고서가 비슷한 유형의 문제와 지문을 다루기 때문. 일부에서는 EBS 주장대로라면 다른 출판사 교재도 80%의 적중률을 보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비아냥도 나왔다.

◇ 올해 수능은

EBS 수능방송 시작 첫 해인 지난해 수능시험에서 EBS의 체감 출제 정도가 그리 높게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올해 출제 방향을 가늠하게 해 준다. 지난해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는데도 결과가 그러했다면 그보다 훨씬 조용해진 올해 체감 출제도가 지난해보다 높아질 수는 없을 것이라고 고3담당 교사들은 전망했다.

또 지난해 수능시험이 EBS 출제 정도와 무관하게 교과서와 학교 수업에 충실한 학생이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풀 수 있었다는 사실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수능시험의 출제 이념이 교과서의 기본 개념과 원리 이해라는 데 맞춰져 있는 이상 여기에만 충실하면 어떤 강의를 듣느냐, 어떤 교재를 보느냐 하는 점은 큰 변수가 되지 못한다.

수능 출제위원이나 검토위원들의 반발도 지난해보다 클 것으로 보인다. 학교 현장에서 EBS 수능방송이나 교재 활용률이 떨어진다면 EBS 교재와 강의를 대폭 수능 출제에 반영하는 것은 형평성의 문제가 있기 때문. 특히 현직 교사들로 구성된 검토위원들은 현장 사정에 밝은 만큼 반발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교육부는 지난해 EBS 수능방송을 통해 사교육비 절감에 나서는 전제로 이를 '단기 처방'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후속 조치로 내신 중심 2008학년도 대학입시 개편이 논의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결국 EBS 수능방송과 교재의 수능 출제 반영 문제는 올해와 내년 수능으로 국한될 수밖에 없다. 2008학년도 이후로는 수능 자체의 비중이 떨어지기 때문에 EBS 반영 여부가 그리 문제될 사안도 아닌 것이다.

수험생들은 이러한 내용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수능에 출제된다는 이유만으로 EBS 수능방송이나 교재를 활용할 게 아니라 자신의 수능 대비에 실질적으로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냉철하게 따져본 뒤 공부의 선후를 계획해야 한다. 공부 시간 운용에 부담이 된다면 그 많은 EBS 교재를 모두 본다는 부담을 떨쳐버리고 필요한 내용만 골라서 참고하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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