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 수영장에 처음 갔을 때 있었던 일이다. 나는 많은 저수지와 강이 있는 곳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수영은 자신이 있었다. 개구리헤엄(평영)에서 송장헤엄(배영), 자유형에 이르기까지 흉내는 거의 다 낼 수 있었다. 수영복을 입고 고무 모자를 쓰고 물안경을 착용한 후 자신만만하게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약품 냄새가 역겨웠지만 어린 시절 친구와 강 건너가기 시합을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사력을 다해 강을 건너갈 때 온몸을 힘겹게 하면서도 전신을 더없이 상쾌하게 해 주던 물살의 저항과 탁 트인 자연 속에서의 자유로운 유영을 떠올리자 내가 헤엄치는 좁은 공간과 고무 모자는 나를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답답하게 했다. 나는 모자와 물안경을 벗어 버리고 어린 시절 이래로 몸에 익은 방식으로 자유롭게 헤엄을 쳤다. 한참 열중하고 있는데 안전 요원이 밖으로 나오라고 했다. 모자를 쓰고 수경을 착용해야 수영장에 들어갈 수 있으니 규칙을 지켜달라고 했다. 내가 주의사항을 듣고 있을 때 물속에 있던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며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집에 와서 같이 운동을 한 아내에게 왜 사람들이 나를 보고 웃었는지를 물어 보았다. 아내는 깔깔거리며 오늘 내가 좋은 구경거리였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머리를 물속에 담그고 수영을 하는데 나만 머리를 빳빳하게 들고 헤엄을 쳤다는 것이다. 그 촌스러운 특이한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웃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헤엄을 칠 때 머리를 물속에 담그는 것을 싫어한다. 내 고향친구들도 다 그랬다. 그러나 수영장의 모든 사람들은 머리를 물속에 담그고 헤엄을 쳤다. 우리는 어린 시절 강이나 저수지에서 한나절 내내 헤엄치며 놀아도 머리는 젖지 않게 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아내의 권유로 다음날 수영 코치를 찾아가 시골에서 배운 폼을 교정받고 싶다고 했다. 코치는 초급반에서 발차기부터 하자고 했다. 나는 헤엄을 잘 치기 때문에 중급반 정도부터 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나 같은 사람이 더 머리 아프다고 했다. 아예 맥주병을 가르치는 것이 더 빠르다고 했다. 이미 굳어버린 어설픈 폼은 정말 교정이 어렵다고 했다. 나는 발차기부터 다시 배우는 것을 포기했다. 남이야 웃든 말든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머리 들고 헤엄치기 폼을 그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가며 고치고 싶지 않았다. 그 날 이후로 한 번도 실내 수영장에 간 적이 없다.
수영만 그렇겠는가. 골프도 그렇고 공부도 마찬가지이다. 처음 배울 때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후에 바로잡기는 정말 어렵다. 수학이나 과학에서 자신이 약한 단원은 거듭 틀린다. 처음 배울 때 기초를 착실하게 다지지 않고 진도만 계속 나갔기 때문이다. 운동에서도 어설픈 폼은 대개 빨리 실전 상황에 뛰어들고 싶어 기초과정에 대한 충분한 연습을 무시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기본 원리와 개념을 곱씹고 되씹은 학생이라야 학년이 올라갈수록 성적이 향상된다. 탑을 높이 쌓기 위해서는 맨 아래 기단에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한다.
조기진도(선행학습) 열풍은 대부분 가정에서 사교육비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주된 요인이 되고 있다. 빨리 배운다고 공부를 잘 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빨리빨리에는 대개 날림과 부실이 병행하게 마련이다. 공부든 운동이든 단계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속도에 대한 허상을 바로 보자. 가장 느린 방법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길임을 알아야 한다.
윤일현(송원학원진학지도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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