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60명이 숨지고 90여 명이 부상을 입어 제2의 노근리로 불리는 경북 예천군 보문면 산성리 학가산 자락 마을에 대한 1951년 1월 19일 미군 폭격의 진상이 이번에는 밝혀질까. 정부는 그동안 마을주민들의 억울함 호소에도 외면하다 6·25 발발 55주년을 맞아 지난달 진상조사 활동에 들어갔다.
주민 안식모(76) 할아버지는 "그날 주민들이 아침식사를 마치고 목화씨를 고르는 작업 중 오전 11시쯤 아군 정찰기 2대가 나타나 아주 낮은 고도로 마을상공을 3, 4차례 비행한 뒤 사라졌는데 오후 1시 30분쯤 미군 폭격기 4대가 나타나 마을을 향해 포탄을 투하하고 기관포를 무차별 난사해 아수라장이 됐다"고 50여년 전 참상을 증언했다.
안 할아버지는 "잠시 폭음이 멎어 비행기가 사라진 것으로 생각하고 정신을 차려 주위를 둘러보려 하는데 다시 폭격기 2대가 날아와 기름을 투하한 다음 폭격을 가해 마을이 불바다가 됐다"면서 몸서리를 쳤다.
이기매(76) 할머니도 "당시 이웃집에서 목화를 잣던 중 섬광이 비치면서 '꽝'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 순간 정신을 잃고 한참 뒤 깨어나 보니 허벅지에 포탄 파편이 박혀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이날 폭격으로 즉사하거나 후유증으로 2년 이내 숨진 사람은 70명, 부상자는 90여 명이었다. 마을 전체 가옥 160여 동 중 절반이 완전히 불탔고 가축도 떼죽음을 당했다.
"미군기가 폭격한 게 분명했다"는 안 할아버지는 "폭격 뒤 마을 여기저기 나뒹굴었던 불발탄에 'USA'라는 글자가 선명히 찍혀 있었다"고 기억했다. 실제 이 마을에선 80년대 초반까지 '1945. USA'란 표시가 있는 불발탄이 수차례 발견, 수거됐다. 하지만, 폭격이유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주민들은 산성리와 같은 학가산 자락인 안동시 북후면 신전리에 당시 인민군 패잔병 수백여 명이 들어온 것을 알고 미군이 마을 위치를 오인해 산성리를 폭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추정이다.
당시 피해 주민 60여 가구 중 24가구가 남아 있다. 제삿날도 음력 섣달 열이틀 날로 같은 산성리 사람들은 정부 과거사정리 기본법 제정으로 다시 시작된 진상조사에 한 가닥 기대를 걸고 있다. 주민들은 조사단에 당시 폭격 3일 뒤 미군 6명이 찾아와 사진을 촬영하고 돌아갔고 당시 현장에서 수거한 미군용 기름통과 탄알 등을 미군기 폭격 증거물로 제시했다. 또 정찰기가 폭격 대상 지점(신전리)의 군사 좌표를 폭격기에 잘못 전해 오폭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도 전했다.
주민모임 대표 안태기(58)씨는 "미군 폭격이 분명한데도 우리 정부도, 미국정부도 진실을 감추고 있다"면서 "산성리가 노근리보다 피해가 대수롭지 않다는 것인지 아니면 주민들이 목청을 높이지 않아서 인지, 이제는 울분이 터진다" 고 목청을 높였다.
예천·정경구기자 jkg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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