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공장장과 20대 사업부장, 공장 없는 TV 제조업체, 수요일만 되면 뛰노는 IT기업….
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지역에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이색 경영으로 세계를 놀라게 하는 기업들이 없지 않다. 누구에도 뒤지지 않는 기술력과 경영철학이 뒷받침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세계로 향하는 지역기업들의 이색경영 몇 가지를 들여다봤다.
◇ (주) 맥산
차량용 컴퓨터로 세계적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주)맥산의 정인구 과장. 입사 7년차, 말단 사원 꼬리를 떼고 과장 승진한 지 3년째, 이달 초 결혼한 올해 33세의 '젊은이'다.
하는 일은? 제조사업부장. 생산'생산기획'자재관리를 총괄하는, 다른 회사에서 보통 '공장장'이라고 불리는 자리다. 임원급이 맡는 자리인데? 하지만 정 과장은 부장을 포함한 30여 직원을 이끌며 이 회사의 제조업무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실험적 인사혁신이 단행된 것은 지난해 1월. "직급에 관계없이 그 분야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인재를 책임자로 삼겠다"고 백광 대표는 발표했다. 임원 5명이 반발해 사표를 냈지만 혁신인사는 단행됐다.
사업부별 독립채산제도 도입했다. 직급에 관계없이 능력위주로 임명된 부장은 상당한 직책수당과 직원에 대한 인사고과권(인사고과는 연봉에 직접 영향을 준다)을 갖는 대신 경영실적에 대한 책임을 진다. 매출 이익의 25%를 해당 부서 직원들이 인센티브로 갖게 해 나이나 직급보다는 능력 있는 부장을 모시는(?) 것이 훨씬 이익이 되도록 했다. 물론 부장은 실적과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맥산의 혁신 인사는 이뿐만 아니다. 맥산이 야심작으로 개발, 전세계에서 주문이 들어오고 있는 차량용 컴퓨터 '인필'도 젊은 피의 수혈로 완성됐다. 20대 중반 사원이 인필사업부장을 맡아 신세대 마니아들 감각을 그대로 담은 것. 현재 맥산 5개 사업부 책임자는 사원에서 과장, 부장, 상무급까지 다양하다.
백 대표는 "회사가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참신한 젊은 인재가 필요한데, 연공서열 위주의 조직으로는 이미 보유한 유능한 인재들조차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면서 인사혁신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인사 후 몇 개월 동안 매출이 줄었지만 시스템이 틀을 갖추면서 이후로는 2, 3배씩 매출이 뛰고 있다"며 새로운 혁신조직에 대한 강한 믿음을 피력했다.
◇ (주) 디보스
지난달 27일 코스닥 등록 이후 5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며 단숨에 코스닥 핵심 우량주로 부상한 (주)디보스.
이 회사 매출은 지역 벤처기업으로는 보기 드문 급상승 커브를 그려 왔다. 2001년 23억 원에 불과했으나 2002년 93억 원, 2003년 455억 원, 2004년 658억 원을 기록한 것. 그리고 올해에는 1천250억 원을 예상하고 있다. 4년 만에 54배 이상으로 뛴 것이다. 전체 직원이 100여 명 남짓하므로 1인당 매출액이 무려 12억5천만 원에 이르는 셈이다.
그런데도 이 회사에는 공장이 없다. 자체 생산공장이 없다는 말이다. R&D(연구'개발)와 경영전략'마케팅분야 인력만 보유하고, 나머지 모든 부문은 아웃소싱으로 처리한 것이다.
디보스의 놀라운 성장을 가져다 준 이 같은 경영전략을 심봉천 대표는 '제트기형 스피드 경영'이라고 부른다. 출발은 선택과 집중. 비교우위와 경쟁우위를 나타낼 수 있는 차별화 핵심역량을 기반으로 특정분야에 집중했다. 덕분에 전통적인 피라미드형 조직구조 대신, 디보스는 경영과 핵심인력'핵심 보조인력만 유지한 제트기형 조직구조를 갖추게 됐다.
디보스의 핵심역량은 세계 최초로 개발한 동영상 떨림방지 '미세엔진'과 전 세계 다양한 수신방식을 모두 설계할 수 있는 기술력. 이를 바탕으로 세계적 유명 브랜드를 집중 공략, ODM(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 방식으로 LCD TV를 공급하고 있다. 이는 디보스에게 엄청난 투자비를 절약하게 하는 동시에 세계 유명브랜드와 동일시되는 효과까지 주었다.
샤프 31%, 삼성 17%, 소니'LG 11% 등 기라성 같은 글로벌 대기업이 즐비한 세계 LCD TV 시장에 8번째 시장 점유율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이처럼 독특한 경영전략 덕분이다.
심 대표는 "목표를 명확히 하고, 강한 드릴 팀과 같은 핵심역량을 갖춘 뒤, 빠르게 회전하는 스피드를 갖추면 글로벌 기업과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주)인텍웨이브
LCD TV에 들어가는 인버터 등을 생산하는 (주)인텍웨이브(대표 김영율'구미시 공단동). 이 회사는 지난 2일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사흘 동안 회사문을 걸어 잠갔다.
사정을 모르는 이웃 공장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LG필립스LCD 등 든든한 납품처가 즐비한데다 급속한 성장세 덕분에 2003년 경상북도와 매일신문이 주최하는 '중소기업대상'을 수상할 만큼 잘나가는 회사가 사흘이나 문을 닫다니?
이 기간 동안 CEO를 비롯한 80여 직원들은 지리산으로 갔다. 그리고 화엄사∼노고단∼벽소령∼천왕봉∼중산리로 이어지는 지리산 종주를 했다.
"평일 왜 이런 행사를 하느냐고요? 며칠 일 안 한다고 회사 망합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직원들 모두가 땀 흘리고 손 맞잡아가며 산을 오르면서 공동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큰 것을 얻었는데 며칠 회사일 못한 것이 큰 손실이 되나요?" 우준환 공장장은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다. 수요일 오후가 되면 또다시 공장 문이 닫힌다. 전 직원이 한자리에 모여 작업 대신 체육행사를 갖는다. 축구'농구'족구경기를 갖고 저녁식사까지 같이 한다.
다른 공장 사람들은 이 회사를 '놀자판'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빠듯한 중소기업 형편에 평일 멀쩡한 시간을 운동하면서 보내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창립 초기부터 이런 방법을 고수한 인텍웨이브는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2000년 창립 첫 해 57억 원이었던 매출은 올해 일곱 배 이상 늘어난 400억 원을 바라보고 있다. 12월엔 3천 평 규모의 신축공장으로 입주한다.
다른 중소기업에선 키워놓은 연구원의 이직사태로 골머리를 앓지만 이 회사에선 이직 사례가 아직은 거의 없다. 수요일 조업 손실과 체육행사 비용 등을 따져 매달 수천만 원을 부담하고 있지만 인텍웨이브는 더 큰 것을 얻고 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석민기자 sukmin@imaeil.com
사진: 1. 30대 초반 풋나기 과장으로 공장장 임무를 맡은 맥산의 정인구 과장. 첨단벤처기업 인사혁신의 전형이 되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imaeil.com 2. 디보스는 자체 생산공장 없이도 매출 1천억 원 이상을 올리는 첨단 제조기업이다. 세계 최대 박람회 중 하나인 세빗에 출품된 (주)디보스의 LCD TV. 3. LCD TV에 들어가는 인버터 등을 생산하는 인텍웨이브는 스포츠 경영을 통해 회사 힘을 키우고 있다. 사진은 이 회사 전 임직원이 이달 초 평일 사흘 동안 지리산 종주에 나서 천왕봉에 오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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