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어째서 우리에게 이런 시련이"

"엄마가 간에 물혹이 생겨서 잠시만 입원해 있으면 된대. 걱정 말고 누나랑 집에 있어. 아빠가 와도 너무 싫은 내색하지 말고 조금만 참아. 엄마가 곧 데리러 갈게. 착하지 우리 왕자와 공주님…."

거짓말을 해야했습니다. 착한 내 아들, 딸에게 차마 사실을 말할 순 없었습니다. 지 엄마가 '간암'이라고.

암세포가 너무 커서 수술도 어렵다는 말을 차마 못하겠습니다. 제 간에는 6㎝가량의 종양이 기생하고 있습니다. 거의 말기나 마찬가지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제가 지금 아플 때가 아닌데 이렇게 입원실 한쪽에 누워있으니 별의 별 생각이 다 나네요. 기가 찰 노릇입니다. 죄라도 졌으면 그 죗값을 받는 중이라고 한탄해 보겠는데. 하늘은 왜 이다지도 무심합니까. 왜 하필 우리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겁니까.

제 하나뿐인 아들 승필이(15). 휴대전화로 사진 찍을 때 온갖 애교를 다 부리는 착한 아들. 지 엄마 웃겨주겠다고 온갖 썰렁한 유머를 쉴 새 없이 쏟아내는 귀염둥이. 그런 착한 아들이 지난해 봄부터 급성림프구성 백혈병을 선고받았습니다. '엄마, 팔이 아파. 너무 아파서 잘라내 버리고 싶어"라고 했을 때 '그런 소리 하는 게 아니야'라며 막 혼을 냈었는데…. 아마 그 표현보다 몇 배는 더 아팠을 겁니다. 가까운 병원에서 간단한 혈액검사를 받았습니다. 다음날 큰 병원에 가보라더군요. 3년 정도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답니다. 조혈모세포나 제대혈을 이식하거나 골수이식하면 낫는다고 하는데 그게 꼭 맞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더군요. 거기다 지난 봄에 승필이에게 화농성 관절염이란 합병증이 왔어요. 비싼 항생제를 다섯 달 넘게 썼는데 그동안 백혈병 항암치료를 못해 암세포가 자랐다네요. 그런 자식을 두고 엄마까지 아파야 합니까.

부끄러운 얘기지만 저는 3년 전 남편과 헤어졌습니다. 결혼 직후부터 노름판을 기웃거렸던 남편은 여자 문제도 심각했습니다. 애들 때문에 참고 또 참았는데… 어느날 애들이 '이제는 헤어져도 된다'고 하더군요. 지네들 다 자랐다고, 상처받지 않겠다고.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아빠랑 헤어지라고 했습니다. 그래선 안됐는데 정말 살기가 힘에 겨웠어요.

남편은 집 살 때 명의를 제 앞으로 해놨습니다. 승필이 치료비 때문에 아파트를 팔았는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남편의 대출금이 고스란히 빚이 되어 저에게 넘어오더군요. 애 간병하느라 정신없었던 저는 어디서 생긴 빚인지도 모르고 이자를 갚아나가야 했습니다.

이렇게 할 일이 많은데 왜 암세포가 제 몸 속에 있는거죠? 왜 우리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해야 되는지….

애들은 지금 남편의 집에 들어가 힘든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혹 잘못되면 저 어린것들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방 한 칸 옳게 마련해주지 못한 제가 이렇게 한심할 수 없어요. 우리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월 30만 원을 받고 있지만 그것이 전부입니다.

"엄마, 그리스신화 보니까 사람을 묶어 놓고 간을 빼먹는 새가 있었대. 간을 조금만 남겨놓고 다음날 다 자란 간을 또 먹으면서 괴롭힌대. 근데 조금만 바꿔 생각하면 간이 그만큼 빨리 자란다는거잖아. 힘내 엄마."

최성숙(43)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아들이 남긴 말을 곱씹으며 희망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저희 '이웃사랑' 제작팀 계좌번호는 대구은행 069-05-024143-008 (주)매일신문입니다.

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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