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환경과 생명을 살리는 정치

1969년 9월 14일, 평소 즐기던 잡기들을 모두 끊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집권 연장을 위해 3선 연임을 금지시킨 헌법을 뜯어고쳤다.

국회 본회의장도 아닌 별관에서 벌어진 날치기 헌법 개정이었다.

절대 권력화를 주장했던 군사 정권은 긴급조치를 발동시키고, 유신을 결행하고, 반대하는 이들을 붙잡아다 고문하고 살해했다.

그 시대에 나는 민주화가 될 때까지 잡기를 끊겠다고 맹세했다.

그 결과, 내 청춘의 가장 빛나던 시간의 절반을 감옥에서 보냈고, 또 반은 민주화운동을 위해 보냈다.

옥에서 동지들과 미래에 대해 토론했다.

대부분 정치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노동현장으로 가자, 아니다 전위 정치운동을 더 세게 하자 등 논쟁이 격렬했다.

대부분은 정치운동을 하거나 노동운동을 하겠다고 했다.

나는 공해추방운동을 하겠다고 했는데 이 의지는 동지들에게 이해받지 못했다.

김지하·이부영 선배만이 내 뜻을 지지하고 격려했을 뿐이다.

나는 생각했다.

현 민주주의 문제는 대의민주주의의 절차와 이 제도의 실질적 바탕인 시민의 지지가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제도를 바로 잡는다고 정치와 한 몸인 개발과 경제 제일주의라는 폐단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정경체제의 그림자는 공해문제이자 곧 환경문제다.

이 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접근해 해결하지 않으면 설령 우리가 절차적 민주주의를 제도로서 굳건히 만든다 하더라도 환경문제는 여전히 뒷전에 밀릴 것이다.

나는 시민의 지지를 받아 환경운동을 하겠다.

이후 전개된 한국 시민운동의 르네상스와 역사적 성과를 생각하면, 옥에서 내가 동지들과 토론하면서 얻은 환경운동의 신념과 철학은 결국 그 당대적 관점에서 새로운 사회적 패러다임을 내면화한 것이었다.

옥에서 나와 30년간 환경운동의 현장에 있었다.

그렇지만 오늘날에도, 환경은 넘어서고 극복해야 할 높고 험한 산이다.

30년간 오직 환경운동만 하고도 환경을 제대로 지켜나가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떨칠 수 없지만, 또다시 마음을 세우고 생각을 다잡는다.

우리 시민운동은 오늘날 어째서 이렇게 현실 개혁능력이 떨어지는가. 왜 절차적 민주주의를 확보한 오늘날에도, 군사독재를 밀어내고 민간정부가 3대째나 들어서고도 환경문제는 더욱 심각해지는가.

결국 정치를 제도로서 개선하는 운동, 경제를 상식의 차원에서 운동시키려는 사회운동의 시도는 한정된 진보밖에 가져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정치와 경제는 더욱 완전하게 밀착해 이윤을 내는 기제로서만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소수의 이익집단이 정치와 경제 양면에서 강력한 물리력을 바탕으로 막강한 로비력을 뽐내며 시민사회의 열망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폐해는 환경과 생명의 문제로 남았고, 삶의 질적 저하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제 경제가 목적이 아닌 세상, 이윤과 권력이 목적이 아닌 세상을 꿈꾸어야 할 때다.

과거 우리의 꿈이 이윤과 권력을 공평하게 하여 절차적으로 시민의 손에 가져오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그 이윤과 권력을 시민들이 자신의 생활 속에서 실감나게 느끼면서 공동체를 위해 실제로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할 때다.

생활과 동떨어진 정치인들을 위한 정치, 삶과는 무관하게 자사의 주식가치만 높이려는 대기업의 횡포는 이제 멈추어야 할 때다.

정치를 시민의 손에 되돌려주어야 환경과 생명이 살아난다.

환경과 생명은 기존의 정치와 경제 엘리트, 그들이 꾸린 제도권 안에서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의제이지만, 우리 시민들에게는 그야말로 삶의 질이 달린 생명의 의제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나를'배지 없는 7선 의원'이라 부르기도 한다.

정치권으로부터 일곱 번 러브 콜을 받고도 출마하지 않았던 일을 빗댄 호칭이다.

나는 여전히 환경과 생명의 의제를 다루지 않는 정치를 할 생각이 없다.

그러나 이제 우리 시민사회는 새로운 시대를 책임질 새로운 녹색의 사회이념으로 무장한 새로운 생활의 정치그룹을 열망하고 있다.

나는 꿈을 현실로 바꾸기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시민들과 함께 우리의 꿈과 비전을 건다.

새로운 철학을 가진 사회적 책임세력의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최열 환경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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