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채널 돋보기-광개토대왕비문

1천775자 광개토대왕비문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 있을까. 놀랍게도 비문 가운데 3분의 1 이상은 능지기에 대한 기록이다. 그야말로 비문 한 면 가득히 대대로 왕릉을 지킬 수묘인이 새겨져 있다. 왕릉을 지킬 사람들은 330호, 약 1천500명에 이른다.

1일 밤 10시 방송될 KBS 1TV 'HD 역사스페셜-고구려, 천하의 중심을 선포하다-광개토대왕비' 편은 광개토왕비에 새겨진 고구려의 수묘인 제도와 군대 등 역사를 캔다.

역사기록에 따르면 도굴이 성행해 당시에도 왕릉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도록 숨기는 것이 관례였다. 그럼에도 광개토대왕은 중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거대한 비석을 세워 자신의 묘를 알리고 지키도록 했다. 광개토대왕이 이처럼 자신의 무덤을 알리는 거대한 비를 세운 이유는 죽어서도 자신의 무덤이 훼손되지 않으리라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보인다. 비문에선 수묘인 제도를 정비하여 선조왕의 능을 지키기 위함이란 기록이 보인다. 수묘인은 330가구라는 엄청난 규모다. 게다가 수묘인은 모두가 요동, 한강 지역 등 정복지 출신의 새로 편입된 백성들로 구성됐다.

한편으로 광개토대왕비에는 호태왕이 정열적으로 수행했던 숱한 정복 전쟁에 대한 기록이 담겨있다. 중국 대륙 시라무렌강에서 한반도 남단 종발성에까지 이르는 광개토대왕의 대제국. 끊임없는 영토 확장의 뒤에는 다양한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는 당대 최고의 군대가 있었다. 당시 고구려 군대의 수준은 어느 정도였을까. 가상 전쟁 상황실에서 최강 군대 로마 병사와 무기류 등의 전력을 비교해 본다. 더불어 천하의 중심이라는 신념 하에 동서남북 전방으로 뻗어나간 고구려군의 진격 루트를 추적해 본다.

이와 함께 광개토대왕비에는 국가체제 정비와 영토 확장이라는 국가적 과제와 다양한 종족과 문화의 통합이라는 사회적 과제를 해결해야 했던 고구려의 모습이 담겨 있다. 고구려는 고구려가 천하의 중심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주변의 여러 국가들을 직접 통치하기보다 제후국으로 거느렸던 것도 고구려다. 또한 그 복속민들을 왕릉 수묘인으로 지정하여 점차 고구려의 백성으로 받아들이는 포용력과 자신감도 갖고 있었다.

사진: KBS 1TV 역사스페셜은 1일 광개토왕비에 새겨진 역사의 전모를 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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