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문명의 치료지식을 찾아서/기젤라 그라이헨 편저/박해영 옮김/이가서 펴냄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사람을 보냈다는 일화에서 엿볼 수 있듯이 무병장수는 인간이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욕망이 아니다. 최근 현대 의학이 여러가지 한계를 노출하면서 대체의학이 급부상하고 있다. 현대 의학은 에이즈나 사스(SARS) 같은 신종 유행병 앞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화학적으로 생산된 약품들의 부작용으로 사람들이 죽어가고 병원균은 의약품에 대한 저항력을 키움으로써 의약품의 효능까지 위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암을 치료한다는 약초나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는 인도의 향기 요법,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의 정력 유지에 사용되었다는 식물 뿌리 등의 정보는 현대인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대체의학은 단순히 증상만을 억제하는 현대 의학과 달리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인간의 몸 안에 내재돼 있는 자기회복, 자기진단, 재생 메커니즘을 활성화시킨다는 점을 내세워 급속히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 미국의 한 언론조사에 의하면 미국인의 60% 이상이 대체의학과 현대의학을 겸하여 치료하는 의사에게 호감을 갖는다는 통계가 나왔다.
이 책은 '초록 신들의 주문에 사로 잡혀'라는 제목으로 독일 공영방송 ZDF가 방송한 다큐멘터리 내용을 엮은 것이다. 고고학자, 식물학자, 약리학자로 이루어진 탐사팀이 파라오 제국, 마야 제국, 고대 인도의 의학사전 아유르베다, 아랍 의학자들의 세계에서 잊혀지거나 변질된 고대 치료술과 치료 식물들을 재발견해 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원시림에서부터 사막에 이르기까지 민간요법과 약용 식물을 찾아 나선 탐사팀은 현지 치료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물어 몰락한 문화가 남긴 지식의 발자취를 쫓아가면서 다시 세상의 빛을 기다리는 치료 식물들을 찾아내고 있다.
그러면 탐사팀이 처음으로 찾은 고대 이집트에서 어떤 치료법이 사용되었을까. 기원전 1213년 람세스 2세가 위독하자 당시 의사들은 람세스에게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 강한 향을 지닌 물질을 투여했고 유황, 몰약, 테르펜틴과 같은 방향성 식물수지를 태우고 카모밀라 꽃이 든 방향성 연고로 왕의 가슴을 문질렀다. 의사들은 먼나라 인도에서 온 기적의 식물 후추도 마련해 두었다. 또 뼈마디가 굳어진다고 호소하던 람세스 2세에게 관절에 따뜻함을 주는 여러 식물의 씨를 첨가해 만든 연고를 무릎과 팔꿈치, 골반에 발라 주어 큰 효과를 보았다.
탐사팀은 이집트 의학을 기록한 파피루스 등을 통해 미무소프스 수액이 오래전부터 화상 치료에 사용 되었으며 아주까리 기름은 피부질환, 뿌리는 두통, 나일강아카시아 잎은 뱃속 아픔이 있을때 복용했음을 확인했다. 이와함께 실체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수면체리, 소돔의 사과, 사리풀 등의 식물이 파라오 시대 치료에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피라미드 건축자이자 위대한 의사 임호테프의 발자취도 추적했다.
인도 조드푸르의 마하라자의 고궁에서는 시의인 자나르단 바르드와즈씨를 만났다. 궁전 정원에서 매일 처방용 약초를 채집하고 있는 그는 인도 대추야자 껍질로 끓인 죽은 간과 위, 장을 튼튼하게 해주고 인도사목은 광기를 치유하는 인도의 영약이라고 소개한다.
탐사팀들은 3주에 걸쳐 인도 대륙을 여행하면서 이마에 기름을 계속해서 부어 주는 아유르베다(인도 최초의 의술백과사전) 치료를 접했고 자연의약품이 생산되는 약국과 공장들을 방문하기도 했다.
멕시코에서는 '악마의 척추'라는 뜻을 가진 식물 페딜란투스 티튀말로이데스를 두통을 없애는데 사용하고 선인장종인 노팔레아 코케닐리페라가 암질환과 당뇨병을 예방한다고 믿는 마야 후손들을 만난다. 탐사팀 일원인 아니타 안클리, 미햐엘 하인리히 교수는 정원에서 마야 후손들을 대상으로 18개월간 약초 사용을 조사, 민간 치료에 이용되고 있는 320가지 약초를 밝혀내고 잃어버린 마야 치료 지식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언어학자인 오르트빈 스마일루스 교수의 도움을 얻어 마야족의 고문서인 '칠람 발람'을 분석하기도 했다.
이란에서는 위와 장을 진정시켜주는 효능을 지녔다는 페러시아 라벤더와 이란 민간의학에서 상처치료를 가속화시켜주는데 사용하는 페리시아 튤립 등을 접했다.
탐사팀은 수 백년 혹은 수 천년에 걸쳐 보존되어 온 고대 치료 지식의 원류를 찾는데 그치지 않고 발견된 치료 식물의 효능을 검증하는 작업도 빼놓지 않았다. 이란에서 가져온 '쥐오줌풀'이 진정제와 부인병에 효능을 보이는 것을 확인하는 등 세계 곳곳에서 채집한 식물들을 실험실에서 분석, 우리 세대 또는 다음 세대에 유용하게 사용될 지 모를 연구들을 위한 기초를 제공하고 있다. 이경달기자 sar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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