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오늘 비가 내리는거야." 영경이(11·여·본지 6월 1일자 이웃사랑 보도)는 1일 아침 일찍 빗소리에 잠을 깼다. 새까만 구름으로 온통 뒤덮인 하늘, 장독대로 '뚝뚝' 떨어지는 굵은 빗방울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오늘 꼭 해야하는데…. 손꼽아 기다려온 이삿날 아침, 영경이의 마음을 모르는 듯 하늘에서는 무심한 비만 주룩주룩 쏟아졌다. 영경이는 할머니(63) 혼자서 어떻게 이사를 할 지 걱정을 안고 학교에 갔다.
빗줄기가 더욱 굵어지던 오전 11시쯤. 단정한 유니폼을 입은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들이닥쳤다. 그것도 14명씩이나 한꺼번에. '사랑의 빛 나눔의 별'이라고 적힌 파란색 조끼를 갖춰입은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지키미봉사단' 회원들이었다.
"지난달 매일신문 '이웃사랑'란에서 영경이 기사를 읽었습니다. 직원들이 도와줄 일이 없을까 고민하다 신문사에 연락했죠. 오늘이 이삿날이라길래 이렇게 달려왔습니다."
준비한 비닐옷을 재빨리 갈아입은 강남규(37) 대리는 순식간에 직원들과 할 일을 나눴다. 여자 직원은 모두 이사갈 집에 투입됐고, 남자직원은 짐 싸고 나르는 힘든 작업을 맡았다.
부엌이 딸린 4평 남짓한 방 한 칸이지만 이삿짐은 무지막지했다. 종이나 재활용품을 주우러 다니는 할머니가 쓸만해보이는 물건은 모조리 집으로 가져와 쌓아두었기 때문. 없는 게 없다. 메주, 아이스박스, 가스버너, 압력밥솥, 대형 여행용가방 5개, 수백여 벌의 헌옷, 곰팡이 핀 라면에다 고장난 텔레비전과 냉장고 2대. 1t 트럭이 세번 다녀가도 부엌짐은 손도 못댈 형편. 지나가던 이웃 주민도 "코딱지만한 방 한 칸에 이삿짐은 열 톤이여 열 톤!"하며 웃었다.
비는 멈출 줄 몰랐다. 마음이 한껏 무거워져 있던 할머니를 보고 서영훈(32·무선사업부)팀장이 "비 오는 날 이사해 부자 된 사람 많습디다"라며 위로하자 할머니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이 풀어졌다.
지키미 봉사단의 신광희(27·무선사업부)씨는 "비가 와서 땀도 덜 나고 시원해서 오히려 일하기 더 좋다"며 "튼튼한 두 다리에 번듯한 직장까지 가진 우리는 오히려 봉사하며 살 수 있다는데 대해 감사한다"고 말했다. 신발을 벗어 엎어보니 빗물이 가득 쏟아졌다.
오후 4시. 무명의 독지가가 영경이집으로 보낸 컴퓨터를 설치하면서 집 정리가 마무리됐다. 학교에서 돌아온 영경이는 "어? 우리집 맞아요? 깨끗이 정리가 돼 있네"라며 뛸듯이 기뻐했다.
지키미봉사단원들은 "우리의 작은 힘이 누군가에겐 아주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진정한 나눔정신"이라며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당장 달려와 봉사의 힘을 보여주겠다"고 말하고는 구미로 돌아갔다. 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
--------------------------------------------------------------------
알림 =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봉사팀들이 매일신문 '이웃사랑'과 함께 봉사활동을 펼쳐나갑니다. '돈'보다는 '사람'이 필요한 어려웃 이웃들을 위해서라면 어디든 달려가겠다는 각오로 나눔정신을 이어나갈 계획입니다. 지역 기업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리며,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은 매일신문사로 연락바랍니다. 053)255-7903.
사진 :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지키미봉사단' 회원들이 1일 오전 영경이네 이사짐을 옮기고 있다. 이상철기자 finder@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3·1절에 돌아보는 극우 기독교 출현 연대기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김세환 "아들 잘 부탁"…선관위, 면접위원까지 교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