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탄생 320주년을 기념해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바흐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이 행사의 일환으로 몇 달 전 오르간제작사 'Bosch'와 음악잡지 'Organ'이 함께 마련한 바흐투어를 다녀왔다. 300여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바흐가 태어나 자라고 죽음에 이르도록 음악에 봉사한 흔적들을 더듬어 보는 여정이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아이제나흐로 떠나는 아침, 하늘과 땅이 끝도 없이 눈꽃으로 반짝이는 가도를 달렸다. 1천300년 역사의 옛 동독의 작은 고도 아이제나흐는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다. 바흐의 생가는 'Bach Haus'란 이름으로 그가 사용한 많은 고악기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몇백 년의 시간을 뛰어 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리에게 친숙한 동지며 이웃이며 스승으로 다가왔다. 그는 영원히 손에 잡히지 않는 큰 별이었다. 아직도 그는 살아 있었고, 우리에게 음악에의 진지함을 요구하는 듯했다.
아른슈타트에서 만난 1680년에 세워진 교회의 오르간은 아주 전형적인 바로크 스타일이었다. 한 달에 한번씩 시리즈 연주회가 열리는데 마침 그날은 동남아 쓰나미(지진해일) 피해 주민을 위한 모금 연주회여서 더욱 인상적이었다. 여정은 바이마르-에르푸르트-드레스덴으로 이어졌다. 바이마르에서는 바흐뿐 아니라 괴테, 쉴러가 여전히 살아 숨쉬었고 멘델스존, 리스트 등 수많은 음악가들이 서로 교류하며 방대한 작품을 낳은 역사적인 도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아직도 그곳 사람들은 불멸의 문인, 예술가들과 더불어 살며 그 삶을 공감하는 듯했다.
바흐를 찾아 떠난 이 먼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고도 라이프치히였다. 라이프치히에서는 저녁 산책길이나 어느 길목에서라도 바흐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마저 일어났다. 가난과 죽음, 상처와 절망과 같은 현실 속에서도 어떻게 그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존중했을까?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우리가 진정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할 삶의 방식과 그 결과에 대하여, 또 우리 아이들이 그것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하여….
오르가니스트·공간울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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