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첨성대

1173년에 세워진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은 전 세계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뛰어나게 아름답지도, 예술적 가치가 큰 건축물도 아니다. 공학적으로는 실패한 건축물이다. 그럼에도 세계 7대 불가사의에 꼽힐 정도다. 다름 아닌 삐딱한 그 모양새 덕분이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선 그 모습 때문에 세계 각국으로부터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이 탑은 잘못 알려진 과학사의 대표적 사례로서도 유명하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이 탑에서 공 두 개를 떨어뜨려 "가벼운 물체나 무거운 물체나 같은 속도로 낙하한다"는 사실을 증명해 근대적 역학법칙의 기초를 세웠다는 설이다. 실제로는 네덜란드인 시몬 스테판이 2층 창문으로 두 개의 납공을 떨어뜨려 실험한 것을 갈릴레이의 제자가 '갈릴레오전'을 쓸 때 이를 혼동하는 오류를 범했다는 것.

◇한국판 피사의 사탑인가. 국보 31호인 첨성대가 북쪽으로 7.2㎝, 동쪽으로 2.4㎝ 기울어졌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첨성대가 기울어진다는 얘기는 이전부터 나왔으나 이번에 배재대 손호웅 교수가 '형상역공학'이라는 첨단 기법을 처음으로 문화재 조사에 적용해 정밀 측량해냈다. 첨성대 맨 아래쪽 기단석이 북쪽으로 1.91도, 동쪽으로 0.745도 기울어진 사실도 알아냈다.

◇신라 선덕여왕 재위 때(632~646) 세워져 1천400년 가까운 풍상을 겪어온 첨성대가 기울어졌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낄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이자 빛 바랜 수학여행 사진 속 추억의 첨성대가 아닌가. 가장 주목되는 점은 첨성대의 기울어짐이 '현재진행형'인가 하는 문제. 손 교수는 수분이 많이 포함된 무른 토양과 기초에 사용된 호박돌이 많이 깨져 있는 사실 등을 들어 "서서히 기울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1990년 피사의 사탑이 마침내 4.5m나 기울어졌을 때 이탈리아 측은 대대적인 보수에 나서 적절한 기울기를 유지하는 수준으로 복구했다. '삐딱이 탑'을 계속 관광상품화하려면 적당히 기울어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첨성대는 다르다. 비록 천년을 훌쩍 뛰어넘은 노탑(老塔)이지만 하늘을 향해 당당하게 서 있는 원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전경옥 논설위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