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불신받는 교통영향평가-(하)제대로 하려면

말 그대로 교통만 다루는 제도 운용을

대구의 교통영향평가는 왜 이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은가. 이유는 간단하다. 교평의 원칙을 지키지 않아서다. 원칙이 무너진 교평을 바로세우기 위해선 어떤 노력들이 필요할까.

◇관은 개입하지 말라

전문가들은 대구시가 공공사업을 교평 통과의 수단으로 악용해선 안 된다고 진단한다.교평 위원인 지역 대학 한 교수는 "대구시가 교평 심의에 사사건건 개입하지 않고, 공공사업을 사업자에게 떠안기지 않으면 교평의 원칙은 상당 부분 지켜진다"며 "교평에선 말 그대로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 교통량만 다루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교수는 "지하차도, 고가차도, 지하보도 건설 등 공공사업 성격이 강한 도시기반 시설은 교평이 아닌, 별도의 전문 심의기구에서 대구 도시계획이라는 큰 틀에서 심도있게 논의해야 하며 이후 행정 책임부서에서 공공사업을 시행하면 된다"고 했다.

또 대구 교평 위원인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대구는 주상복합건물이나 대형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 그때그때 교평 등에서 결정해 난개발만 불러온다"며 "지구 단위 계획을 세워 대형 건물군을 어디에 모으고, 건물마다 용적률과 층수는 어떻게 조정하고, 연면적은 어느 정도 허용할 것인지를 전문적으로 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출발부터 공정하게

교평의 가장 큰 숙제는 사업자가 교평 용역 기관을 선정하는 법상 맹점부터 바로잡는 것이다. 사업자와 평가기관이 '계약상의 '갑'과 '을'의 관계에 얽매여 있는 이상 제대로 된 평가는 애시당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교통 전문가들과 평가기관들은 두 가지 개선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첫 번째 모델은 국가나 지자체가 교평 비용을 공탁하는 것이다. 이 비용으로 공개 입찰을 통해 평가기관을 선정하면 객관적 조사가 가능하다는 논리다.

두 번째는 사업자가 교평 비용을 부담하되, 평가기관들의 전국 모임인 교통영향평가협회가 조사 업체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협회가 지역과 사업 규모에 따라 조사 업체를 선정하면 사업자가 평가기관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

전문가들은 "몇몇 지자체가 입찰 방식을 검토한 적이 있지만 사업자 반발이 거셌다"며 "정부 차원에서 지자체 및 사업자 의견을 적절히 조율해 새로운 평가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통량 조사는 이렇게

교통영향평가 지침은 시설, 사업 규모에 따른 주변 교차로, 가로 분석 범위를 12~30개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사업자가 교통영향평가서 작성을 서두르면서 평가기관들에게 주어지는 교통량 조사 기간은 하루, 이틀이 고작이다. 이 때문에 교평에서 가장 중요한 교통량조사는 하나의 요식행위으로 전락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교통량조사의 데이터베이스화, 교통영향평가 결과에 대한 백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시·도 정기교통량, 도로교통 통계연보는 물론 교평 때 조사한 교통량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교통량 조사의 신뢰성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교평 때마다 실시한 교통량조사, 교통유발계수, 주차 자료 등이 일단 심의만 끝나면 '휴지조각'으로 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한 교평 위원은 "교평 자료를 체계적으로 축적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이 같은 업무를 담당하기 위해 교통영향평가센터(가칭) 설립도 검토해 볼 만하다"고 밝혔다.

대구시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지만 수백억 원 규모의 공공사업을 대가로 교평을 완화해주는 마당에 교평 자체를 체계화하는 일을 소홀히 한다면 앞뒤 순서가 바뀐 것이다.

◇교평 심의는 이렇게

1990년대 말 교평심의위가 고정제에서 풀제로 바뀌면서 대구 교평위원은 15명에서 40명으로 늘었다. 위원장(대구시 교통국장)을 비롯한 시 공무원 5명, 대구지방경찰청 1명, 관련 교수 19명, 시민단체 9명, 건축전문가 4명 등으로 구성해 8~10명씩 돌아가며 심의를 주관하고 있다.

외견상으로는 잘 짜여진 진영으로 보이지만 너무 많아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한 교평 위원은 "교통전문가 이외의 비전문가, 타분야 전공자 위촉 등으로 교통 외 사항에 대해서도 심의가 이뤄지고, 타 분야 목소리가 전체 의견이 돼 심의가 지연되기도 한다"며 "심의위원 개개인의 주관적 특성과 판단에 의해 심의 결과가 뒤바뀌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풀제에 탄력을 가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민감한 사안이나 재상정건에 한해서라도 풀제 대신 고정제를 실시하고, 관련 전문가들을 엄선해야 한다는 것.

심의의 효율성을 위해 사전검토제를 활성화하는 방안도 요구하고 있다. 지역 대학 한 교수는 "교평에는 본심의 전에 문제점을 지적, 보완하는 사전검토제가 있다"며 "위원들이 사전검토 때 지적한 내용을 사업자에게 미리 전달하면 사업자는 지적한 사항을 최대한 수용, 교평 기간을 훨씬 앞당길 수 있지만 300~400쪽 분량에 이르는 보고서를 아예 읽지 않고 본 심의에서 참가하는 위원들도 있다"고 했다.

가능한 한 사전검토 때 의견을 제시하도록 명문화하면 사업자 입장에서는 대안 제시 기간을 더 벌 수 있고, 심의위원들도 사업에 대한 이해와 개선 방향을 더 잘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선택과 집중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교평을 위해 강화할 것은 강화하고, 완화할 것은 완화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특히 공동주택, 주상복합 등의 평가 장치는 현재 허술하며 훨씬 강화해야 한다는 것.

연면적 6만㎡ 이상만 교평 대상에 포함돼 실제 난개발로 치닫는 동대구로 일대의 경우 대형빌딩 10개 중 8개가 평가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대구시가 도시 개발의 원칙을 지키는 것과 동시에 정부도 교평 관련법을 고쳐 교평 대상을 중소 규모 건축물로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또 난개발 지역에 한해서는 주변 개발 계획이나 교차로, 가로 분석 범위도 지금보다 더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교평 심의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자 교평 관련법 전반에 대한 개정안을 마련해 지난 16일 입법 예고했다.정부는 교평에서 심의 안건과 직접 관련이 없거나 법령에 근거 없는 과다한 심의를 하지 않도록 못박고 구체적인 심의조건을 명시토록 했다.

또 지자체 교통국장이 맡고 있는 교평 위원장을 민간위원 중에서 호선토록 했으며 심의위원 지정 방식도 풀제 등이 아닌 무작위 선정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기획탐사팀=이종규기자 jongku@imaeil.com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사진:전문가들은 공공사업을 대가로 교평을 완화하는 것보다 교평 자체를 먼저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사진은 교평 대가로 사업자에게 떠안긴 고가차도 건설이 주민 반대로 무산된 두산네거리 일대. 정운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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