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해인사 비로자나불, 국내 '최고 목불'

경남 합천 해인사 법보전(法寶殿)에 소장된 비로자나불상(毘盧舍那佛坐佛像)이 지금까지 국내에 존재가 보고된 목조 불상중 연대가 오래된 통일신라시대 말기 작품으로 판명됐다.

지금까지는 고려 충렬왕 6년(1280)에 보수된 기록이 최근 발견된 충남 서산 개심사 소장 아미타삼존불상이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불상으로 평가되고 있었으며, 국외 소장품 중에서는 일본 호류지(法隆寺) 소장 백제관음상(百濟觀音像)이 백제에서 제작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해인사(주지 현응 스님)는 이곳 법보전 본존불로 소장된 비로자나불상에 다시 금칠을 하는 개금(改金) 과정에서 이 불상이 중화(中和) 3년(883)에제작됐다는 묵서명 연기문을 발견해 그 제작 연대를 알아냈다고 4일 발표했다.

당 희종(僖宗) 연호인 중화 3년은 신라로서는 제49대 헌강왕(憲康王.재위 875∼886) 재위 9년째에 해당한다.

묵서명이 발견됨에 따라 지금까지 조선시대 초기에 조성된 불상으로 알려져 온이 비로자나불은 해인사 역사와 함께해온 한국 유일의 신라 목조불상으로 드러났다. 이 묵서명은 두 줄에 걸쳐 모두 31자로 적혀 있었으며 판독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른쪽 줄(총 17자) : 誓願大角干主(?)燈身賜彌右座妃主燈身●(?)

▲왼쪽 줄(총 14자) : 中和三年癸卯此像夏節柒(?)金着(혹은 著)成.

이 중 왼쪽 줄을 통해 이 불상이 "중화 3년 계묘년이 되는 해 여름철"에 완성했음이 밝혀진 것이다. 하지만 일부 글자에 대한 판독이 불확실한 데다 이두와 구결등의 이른바 신라식 한문이어서 현장 공개에 참석한 전문가들도 전체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즉답을 피했다.

첫 문장 중간 '賜彌'는 존칭의 의미가 들어간 "○○시니"에 해당하는 신라식 표현일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따라서 첫 문장은 "맹서하며 원하옵나니, 대각간께서등신(燈身)하시어 (??)하시며, 오른쪽 또 다른 불상은 (왕)비께서 등신하시어 (??) 하셨으니" 정도의 뜻이 되지 않을까 추정되고 있다.

'燈身'이란 표현에 대해 진홍섭 박사는 '等身'(등신불의 '등신')의 잘못된 표현이 아닐까 추정했으나, 글자 그대로 몸을 등불에 태울 정도로 치성을 바친다는 뜻으로 해석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세 글자는 조사단에서는 '金着成', 즉 금칠을 해서 (불상을) 완성했다는의미로 보았으나 사진 판독을 한 일부 전문가는 '김저성(金著成)'이라는 이름일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높이 1.25m인 이 비로자나불 좌상은 1972년 2월 12일에 경남시도유형문화재 제4 1호로 지정됐으며 현재 팔만대장경판이 보관된 장경각 뒤편 법보전 본존불이다.

이마에는 반달 모양을 표현하고 있으며, 얼굴은 갸름한 편이다. 귀는 어깨까지길게 내려오고 목에는 3개 주름인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불상이 입고 있는 옷은왼쪽 어깨에만 걸쳐 있고(우견편단), 주름은 평행 계단식으로 표현되었다.

손은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모습(지권인)으로 비로자나불이 취하는 일반적인 손 모양을 하고 있다. 비로자나불은 대일여래(大日如來) 혹은 마하비로자나(摩訶毘盧遮那)라고도 하며 광명한 빛의 세계를 상징하고 있다.

비로자나불 좌우에는 각각 높이 47㎝ 가량 되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아담한크기로 배치돼 있다. 본존불이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판명됨에 따라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상 또한 같은 시기에 제작됐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게 됐다.

이 불상이 지닌 미술사적 가치에 대해 이화여대 강우방 교수는 "옷주름이 매우사실주의적 혹은 자연주의적으로 세밀하게 표현돼 있는데 이는 아마도 재질이 나무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해인사 측은 "이 불상이 지권인을 하고 있으며 우견 편단인 비로자나불 좌상이라는 점은 대한민국 국보들인 석굴암 본존불, 불국사 비로자나불과 같은 비례를가진 8-9세기 다른 신라불상들과 상통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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