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주5일 근무와 자기 발견

본격적인 주5일 근무제가 시작되었다. 그동안 이에 대한 찬반논쟁은 열띤 모습을 보여 왔다. 노동조합 중심의 적극적인 찬성 논리는 선진화된 사회일수록 구성원들에게 노동과 여가 균형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노동의욕을 북돋우고 생산성을 제고하자면 반드시 필요한 접근이라는 주장도 덧붙였다. 노동시간 단축이 산업인력의 육체적, 정신적 부담을 완화하다 보니 업무 효율성, 재해 발생 빈도 측면에서 긍정적 효과가 유발될 수밖에 없다거나, 노동자들이 넉넉해진 여유 시간을 자기계발 기회로 활용할 경우 기업 인적 경쟁력은 우려와 달리 오히려 높아진다는 확신의 표현이었다.

반대 논리 역시 만만치 않았다. 우선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에 노동시간을 줄이려는 정책을 두고 기업의 저항이 심했다. 노동계층 여가 확대가 기업의 인건비 부담 증가와 경쟁력 약화를 낳지 않을까 염려한 탓이다. 따라서 유급 월차'생리휴가 폐지, 연차휴가 상한제 도입, 실시 시기 유예, 작업현장 분위기 이완 등 갖가지 부작용 예방조치 수립 요구는 거셌다. 노동시간이 감소하면 이를 메우기 위해 상당 부분 기계화'자동화에 의존해야 할 텐데 우리 기업의 투자 여력으로 감당하기 곤란하다는 현실적인 설명도 내세웠다.

이처럼 도입 시기와 방법을 둘러싼 대립이 첨예했음에도 불구하고 주5일 근무제 실시는 뚜렷한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그 배경은 분명하다. 우선 오늘날 우리 사회는 여건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졌다. 비록 경제위기를 겪기는 했지만 물질적인 면에서 부족하지 않은 수준이 되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그토록 바라던 양적인 넉넉함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물론 여기에 이르고자 구성원들이 감수한 희생은 엄청났다. 무엇보다 근로자들의 땀방울과 이해가 쌓여 놀라운 발전을 앞당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문화적 환경과 일상생활 유형 역시 크게 변했다. 이제 어느 집단의 일방적인 양보를 통한 경제성장은 거의 불가능하다. 1980년대 이후 근로자 권리가 서서히 신장하기 시작하고, 기업들도 값싼 노동력보다 기술력 위주 고부가가치 산업에 눈을 돌리면서 인력의 인간다운 삶이 관심 대상으로 등장했다. 노동운동은 꾸준히 임금 인상을 앞세웠으나, 요즈음 임금뿐만 아니라 노동시간, 근무환경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여기에다 자본주의 유형과 더불어 대중의 행위유형마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실제로 오늘날 대중사회의 성격과 내용은 매우 독특하다. 거의 모든 개인이 선악 구분을 뛰어넘는 소비 욕망 추구 본성을 우선하므로, 더 이상 생산논리와 이성에 의해 고립된 존재가 아니다. 누구나 자신을 둘러싼 이미지를 과감히 소비하는 감성부족의 일원으로 살아간다. 극단적인 개인주의를 요구하는 구호들이 행위 저변의 새로운 원리로 자리 잡았다. 일상의 느낌, 감정, 유행, 습관 등 정서적, 일회적, 찰나적인 것을 중시하고,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문화현상이 널리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주5일 근무제 도입은 소비가 범람하는 사회 상황과 닿아 있다.

최근 주5일 근무제가 실시될 경우 여유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묻는 여론조사에 응답자들은 취미활동, 가족과 나들이, 외국어 학습 등 자기 계발, 휴식, 봉사활동, 종교활동 순서로 답했다. 이는 우리 사회 대중들이 매슬로가 제시한 욕구의 가장 마지막 단계, 즉 자아 실현의 욕구 충족을 원한다는 뜻이다. 사실 우리 사회도 산업화 과정에서는 여가가 그저 노동을 위한 에너지 재충전 차원의 생물학적 시각으로 수용되었지만, 지금은 삶의 질 문제와 관련하여 보다 고차원적인 욕구를 담아내는 기회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즉 노동과 생산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의지에 따라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가는 소중한 순간이 된 것이다.

여가 중시 경향은 기성세대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교통수단이 발달하고 자동차 소유가 보편화하면서 일어난 레저'관광 붐과 함께 나타났다. 전업주부들 사이에 자기 계발 프로그램 참여 현상이 두드러진 움직임 또한 적극적 접근이다. 노동하느라 잃어버렸던 자신의 존재가치를 재발견하고 삶의 의미와 목표를 재조명하려는 흐름이 광범위하게 형성된 것이다. 주5일 근무제는 이러한 사회 변화에 어긋나지 않는다.

오창균 대구경북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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