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중순 차현숙(가명·39·대구 수성구 수성3가동)씨는 자신을 돕기 위해 방문한 대구 수성구 보건소 '혜민사업팀'에게 대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실랑이 끝에 흰 마스크를 낀 채 나온 차씨는 '내가 입을 열 수 있도록 경찰서장 허가증을 받아 오라'는 황당한 말을 늘어놨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충격으로 수 년째 심한 피해망상에 시달린 그는 해코지가 두려워 아들(9)을 학교에도 보내지 않고 정부 보조금 47만 원으로 사회와 등진 채 낡은 월셋방에서 살고 있었다. 그 후 2개월. 차씨는 이제 마스크를 벗고 어린 아들과 함께 세상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가족처럼 돌봐준 혜민사업팀 덕분이었다.
복지·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이웃을 위해 발족한 수성구 보건소 혜민사업팀이 운영 3개월 만에 의미 있는 성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달 행자부 혁신사례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대구·경북 보건협회 세미나, 경북대 간호대학 학술대회에서는 미래의 보건소 모델로 소개됐다.
혜민사업팀 기동의료반과 계명대 간호대학 등 30명은 수성구 지역 내 기초수급가정, 건강보험료 연체가정, 차상위 계층 등 2천700여 명의 자료를 넘겨받아 지난 2~4월 현장조사를 통해 이를 1천600여 명으로 줄였다.
차씨가 대표적인 사례.
혜민사업팀은 차씨의 입을 열게 하기 위해 동사무소와 함께 가짜 허가증까지 만들었다. 미용봉사자들은 차씨의 머리를 예쁘게 다듬어줬고 자원봉사자들은 초등학교 교과서를 얻어 아이를 가르쳤다. 모자의 심리상태를 알기 위해 경북대 정신과, 교육과에 서신 문의를 했고 틈나는 대로 라면, 과자, 장난감을 전했다.
급기야 모자를 떼어놓을 것인가를 놓고 간담회도 열었다. 자식을 학교에 안 보내 아동학대혐의까지 안은 차씨를 병원으로 보내고 아이를 보육원에 맡길 것인가, 엄마로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격론이 벌어졌다.
안효자 간호사는 "차씨가 어려운 형편에도 생활비의 4분의 1을 아이 학습지로 썼고 아이도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 매달리는 모습이 눈물겨웠다"며 마치 영화 '아이엠 샘'을 보는 듯했다고 말했다.
김민자(가명·69·수성구 매호동) 할머니는 지난 3월 말 골절상을 입은 채 탈진상태로 혜민사업팀을 만났다. 김 할머니는 집 안에서 넘어져 엉덩이뼈를 다쳤지만 남편도 뇌출혈 후유증을 앓고 있어 비좁은 영구임대아파트 방바닥에서 누운 채 지내고 있었다. 구급차에 실려간 할머니는 "수술하지 않으면 죽은 목숨"이라는 의료진의 진단에 수술을 받고 완쾌를 기다리고 있다.
강제입원을 시킨 적도 있다. 술만 마시면 상습적으로 이웃에게 욕설과 폭력을 휘두른 알코올 중독자 유모(59)씨를 경찰의 도움으로 현장에서 붙잡아 정신병원에 보낸 것.
홍영숙 보건과장은 "문제가정의 발견도 중요하지만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복지국가의 최종목표"라며 "각 구청의 복지·의료 당국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사진:정신보건전문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안효자(왼쪽)씨가 우울증 등으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차모씨 집을 방문, 언니처럼 따뜻하게 상담치료를 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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