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휴가철 그곳에서의 볼거리

여름이 되면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 휴가를 떠난다. 여름철 휴가는 그 기간의 길고 짧음, 여행지, 여행목적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래서 관광지로 유명한 국가나 도시, 지방에서는 외국인을 포함한 피서철 인파로 북적인다.

여름의 더위와 볼거리는 가까운 관계에 놓여있다. 추위는 사람들을 움츠러들게 하지만 더위는 반대로 몸을 뜨겁게 하고 시선을 바깥으로 향하게 한다. 땀이 몸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만큼 눈은 그만큼 채워야 하는 모양이다. 물론 우리나라 많은 사람의 피서형태와 같이 바닷가에서 며칠 즐기다 오는 피서법도 있지만 좀 더 확장된 여행의 형태로 생각을 바꾸면 지역의 문화가 관광객들을 얼마나 끌어들일 수 있고, 또 영향력을 주는지 알 수 있다.

실제로 우리가 여행을 떠났을 때 또는 반대로 우리 지역에 관광객들이 왔을 때 관광객들의 시선은 큰 길거리와 뒷골목을 구분하지 않고 그 지역 전부를 훑는다. 그들은 극장, 시장, 옛 건물, 공원, 상점, 책방, 식당 등을 찾아다니고 그것도 모자라 지도와 안내책자를 손에 들고 읽으면서 다닌다. 건물과 길뿐만 아니라 이곳의 모든 삶이 지금 볼거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역 전체가 볼 만한 곳이라면, 그 속살은 유적과 극장, 전시회, 박물관에 있다. 안내책자에 수많은 행사가 실려 있고, 도시 전체가 광고판과 같아 어디를 가더라도 이런저런 공연이나 전시회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포스터들이 크게 붙어있어 눈으로 확인할 수도 있다. 그래서 세계의 유명한 도시에는 여름철을 대표하는 각종 문화행사와 볼거리가 넘친다.

개인적으로 많은 문화행사를 보고 경험하면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문화행사를 주최하는 지역 또는 기관의 원칙과 행사의 형식에 따라 그 지역의 문화수준을 가늠하게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 프랑스의 퐁피두센터나 쇠락한 항만공단도시를 세계 10대의 문화요람으로 만든 영국의 소도시 게이츠헤드(Gateshead)는 인상적이다.

퐁피두센터는 전시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다. 가장 많은 전시 장르인 미술, 문학은 물론 디자인, 건축, 음악 등 다양한 장르를 망라하고 더불어 문화의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이 센터는 싼값에, 가장 편하고 좋은 공간에서, 훌륭한 예술과 문화유산을 모든 이들과 공유하려는 원칙을 지킨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런 행사의 핵심은 형식이다. 예를 들어 가장 대중적 매체인 영화에 대한 전시라 해도, 단순히 어떤 감독의 작품을 나열하고 관객이 얼마가 들어왔고, 당시 평은 어땠고, 상은 탔는지 등의 그런 전시가 아닌, 영화 속에 담긴 그 시대 또는 이 시대의 철학적, 종교적, 미술사적, 지적 형태를 발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전시라면 전시의 품격이 달라진다. 만약 대중영화라 해도 그들의 영화가 당대 예술의 형식과 아무런 차이가 없고, 오히려 당대 예술의 형식을 고스란히 담지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까지 한다면, 그런 행사라면, 그 전시를 찾은 관객은 얼마나 많은 생각과 의미를 찾아갈 수 있겠는가?

지금 우리는 각 지역을 중심으로 대표적인 축제와 문화행사를 키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이제 문화행사에 대한 생각도 천천히 돌아봐야 할 때이다. 게이츠헤드가 예술적인 건축물을 짓고 역사공간을 복원했던 그 정신의 밑바탕에는 자기 지역의 삶과 문화의 어우러짐을 기본으로 하였다.

이제 현대예술인 영화조차도 인간의 역사에서 '고전'이라는 이름을 획득하여 박물관에 보관되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 같다. 그 영예의 작품이나 감독이 누구든 생각할 것은 많다. 모든 자료를 소홀하게 여기지 말 것, 그리고 누군가가 그것에 순서를 정하고 가치를 부여할 때 역사가 된다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삶의 폭과 깊이를 넓힐 수 있다는 것. 관객들은 그것을 통해서 삶과 예술, 문화와 역사가 하나의 고리라는 것을 다시 확인한다. 문화는 행사이기에 앞서 삶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유인촌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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