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랑으로 다시 선 경북인터넷고

'아이들은 사랑을 먹고 자란다'는 말은 100% 정답이다. 경북 봉화군의 경북인터넷고에 가면 이 말을 쉽게 체감할 수 있다. 올해 입학한 1학년생 42명 대부분은 이른바 결손가정 학생들. 중학교 때 성적이 하위권을 맴돌고, 문제를 일으켰던 말썽꾸러기들도 상당수였다. 하지만 두세 명의 학생들과 교사 한 명을 묶어 '가족'이라는 연결고리를 맺은 뒤 사랑이라는 물을 듬뿍 뿌려주자 아이들은 빠르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 아이들은 선생님을 자연스레 '아빠'라고 부른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행동도 달라졌다. 아이들의 변신이 시작되자 학생 수 부족으로 침울해졌던 시골 학교의 분위기까지 한층 밝아졌다. '사랑'으로 다시 일어선 경북인터넷고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싸이폐인이 된 교사

김신동(37) 교사는 뒤늦게 '싸이폐인'(인터넷 사이트 싸이월드의 미니홈피 관리나 일촌 맺기, 채팅 등에 빠져 지내는 사람)이 됐다. 지난 4월 가족 맺기 행사에서 정애'해인'은하의 아빠 선생님이 되기로 하면서 작정하고 '싸이질'에 덤벼들었다. 이전에 교사들을 상대로 정보화 연수를 하며 요즘 아이들의 가장 큰 특징으로 싸이월드를 소개해 본적은 있지만 실제로 자신이 미니홈피를 사용해 본 적은 없었다.

요즘은 하루에 2시간 이상씩 싸이질에 매달린다.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서다. 김 교사는 "매일 밤 아이들의 미니홈피를 모두 둘러보고 방명록에 댓글을 달아주다 보면 새벽 1~2시가 훌쩍 넘어있기 일쑤"라고 했다.

이렇게 아이들과 어울리다 보니 이제는 세 딸의 남자관계(?)까지 훤히 꿰뚫을 정도다. "아이들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퍼붓는 것도 좋지만 눈높이를 맞춰 선생님도 학생을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김 교사가 아이들의 감성 코드를 이해하기 위한 방편이 바로 싸이질이라는 말이었다. 김 교사의 힘겨운(?) 노력에 세 아이들은 "선생님이 아빠가 된 후로는 학교에 오는 게 정말 즐거워졌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지겹기만 했던 학교 공부에도 흥미를 붙였다. 김 교사는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하기를 바라기보다는 밝은 마음으로 사회에 대한 불신과 반감 없이 커 나가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며 "이미 그 목표는 절반 이상 성공한 것 같다"고 했다.

▲아픔을 나누고 함께 앞으로

경북인터넷고에서 가족 맺기 프로그램을 착안하고 아이 한 명 한 명에게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학교의 특수한 학생 구성 때문이다. 경제사정 등을 이유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결손가정 아이들이 많은데다 장애인을 부모로 둔 학생, 보호관찰대상인 학생, 부모의 이혼으로 조부모와 함께 사는 학생 등 사연들도 모두 제각각이었다.

처음 프로그램을 고안한 이무영(46)교사는 "신입생을 배정받은 뒤 가정 방문을 실시하고는 아픔을 가진 아이들이 너무 많아 깜짝 놀랐다"며 "담임이 아무리 훌륭해도 학생 개개인에게 충분한 관심을 보이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에 비담임 교사와 행정실 직원, 학원 이사장까지 모두 동원돼 아이들 지킴이로 나서게 된 것"이라고 했다.

형식적인 프로그램이 되지 않기 위해 세부적인 행사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만들었다. 생일을 챙겨주고,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문자메시지와 전화를 주고받고, 편지도 쓰고, 주말마다 산행을 가거나 놀이를 함께 하도록 하고 일지에 기록하도록 했다. 이런 행사가 하나 둘 생활로 정착되면서 그들은 조금씩 정말 가족이 되어갔다.

등대가족의 아빠인 행정실 직원 권영진(45)씨는 "처음에는 과연 사람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무례하고 무뚝뚝하기만 했던 아들들이 이제는 가슴 아픈 사연도 털어놓고, 어려울 때 손을 벌리기도 한다"고 자랑했다.

학교 분위기도 180도 바뀌었다. '뭔가를 해보겠다'는 의지가 아이들 사이에서 생겨난 것이다. 지난달에는 42명 중 37명이 워드 자격증 시험에 합격했다. 도시에서는 자랑할 만한 숫자가 아니지만 이 학교의 과거 상황을 봤을 때는 괄목할 만한 성장.

권씨는 "예전 같으면 5명만 합격하고 37명이 불합격하는 상황이었는데 지금은 합격자 숫자와 불합격자 숫자가 완전히 뒤바뀌었다"며 "오후 7시30분부터 시작되는 자격증 취득 특강의 참석률도 눈에 띄게 좋아져 빈자리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라고 했다.

▲전교생이 한 가족이 될 때까지

학교 내의 작은 가족은 모두 15개.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은 그 속에서 다시 친족 관계를 형성해가기 시작했다. 단짝 친구가 있는 가족끼리 서로 친해지면서 '큰 아버지', '작은아버지'라는 호칭도 생겨나기 시작한 것.

김신동 교사는 '김씨네 가족'의 큰아버지다. 김 교사의 딸 정애와 단짝인 다정이가 '김씨네 가족'에 있으면서 두 가족 간의 유대관계도 돈독해 진 것이다. 김 교사는 "아마 이렇게 3년을 지내다보면 전교생이 하나의 친족을 형성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벌써 내년에 새로 들어올 신입생에 대한 기대에 한껏 부풀어 있다. "맘에 안 드는 동생이 들어와서 좋은 가족 분위기를 망쳐놓게 놔둘 수는 없잖아요. 우리 가족에 들어올 동생은 저희들이 직접 데리고 오려고 해요."

아이들은 벌써 중학교에 직접 가서 학교 홍보를 하겠다며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무영 교사는 "패배감과 상실감에 젖은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마련한 작전(?)이 학교 살리기 효과까지 낼 수 있다면 정말 일석삼조"라며 "교실 붕괴 현상이 심각한 세상이지만 우리 학교에서만큼은 통하지 않는 단어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보인다"고 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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