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기운을 내뿜는 숲과 깨끗한 물. 여름 계곡은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며칠간 계속되던 장마가 걷히고 오랜만에 햇빛이 든 날. 서둘러 계곡을 찾았다.
차머리를 돌린 곳은 경남 거창의 월성계곡. 남덕유산(1507.4m) 동쪽 자락 5.5㎞의 월성계곡은 지금 물이 넘쳐난다. 하지만 맑다. 거센 장맛비도 계곡의 물을 탁하게 하진 못했다. 물은 마음 속의 때까지 씻어줄 만큼 푸르다. 손을 담그고 발을 담그기조차 민망할 정도. 맑고 깨끗한 계곡 물은 장마 이후의 후터분함마저 잊게 만든다.
문득 소(沼)와 담(潭)에 마음을 비춰본다. 숲이 푸른 만큼, 물이 푸른 만큼 마음도 푸르다. 계곡은 온통 푸르름뿐. 장맛비가 갠 여름날, 계곡에서 마음까지 바뤄 볼 일이다.
들머리인 북상면소재지에서부터 월성계곡은 아름다움을 감추지 않는다.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북상13경 중 제4경인 강선대(降仙臺). 덕유산 모리재 초입의 정자인 모암정 앞의 바위에 강선대라는 음각 글씨가 선명하다. 옛날 신선이 내려와 노닐었다는 전설만큼이나 바위 위를 흐르는 물이 아름답다.
하지만 이곳 경치는 시작일 뿐. 계곡은 상류로 갈수록 운치를 더한다. 분설담, 내계폭포, 수리덤, 사선대(四仙臺) 등 이름만으로도 아름다운 북상13경이 이어진다. 군데군데 너럭바위와 기암절벽, 맑은 물이 멀리 덕유산 자락에 걸친 구름과 어울려 더욱 아름답다.
월성계곡의 특징은 품이 넓은 바위들. 계곡을 따라 오르는 도로 옆에는 간간이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이곳에서 오솔길을 따라 계곡에 내려서면 어김없이 계곡욕을 즐기기에 알맞은 장소다. 상류로 올라가면서 장군바위쉼터 등이 나오고 월성1교에 이르기까지 계곡욕을 즐기기에 좋은 장소들이 잇따른다.
길을 끼고 흘러내리는 월성계곡 경치의 압권은 사선대. 하지만 찾기가 쉽지 않다. 북상13경 중 제7경인 월성숲이 있는 월성리의 삼거리가 길을 헷갈리게 한다. 이곳서 왼쪽계곡을 따라가면 내계마을을 거쳐 함양의 용추사로 이어지는 폭이 좁은 길이 이어진다. 사선대는 월성리서 황점마을 가는 길을 따라 오른쪽 37번도로로 접어들어야 한다. 계곡폭이 왼쪽보다 좁아 속기 일쑤. 월성청소년수련원을 지나자마자 계곡을 건너는 다리가 나타나고 이 다리 주변이 월성계곡의 백미인 사선대가 있는 곳이다.
사선대는 4층 바위 위에서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이 어린 곳이다. 계곡 상류의 이곳을 지난 물줄기는 산자락을 감아돌며 위천계곡과 수승대가 있는 곳까지 거창의 속살을 훑어내린다. 물줄기는 여기저기 암반을 휘돌아 흐르며 여울을 만들고 소를 만들고 담을 만든다. 물소리는 귀를 파고들지만 시끄럽지 않다. 월성계곡은 사선대를 지나 남덕유산 등산의 시작점인 황점매표소에 이르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다.
대구로 돌아오는 길은 월성계곡을 다시 따라내려가기보다 37번 도로를 따라 해발 800m의 남령을 넘는 편이 좋다. 길은 좁지만 포장이 되어 있어 승용차로 무리가 없다.
남령을 넘으면 함양군 서상면. 서상IC에서 대전-통영 고속도로를 타고 함양에서 88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거창을 거쳐 대구로 돌아오면 빠르다.
금원산, 기백산을 사이에 두고 월성계곡과 반대편에 있는 함양의 용추계곡과 화림동계곡도 한여름 가볼 만한 곳이다. 용추계곡은 폭이 좁고 숲이 우거진 반면 화림동 계곡은 폭이 넓고 나무 그늘이 없다. 반면 곳곳에 정자가 있어 운치를 더한다. 하지만 이곳을 대표하는 정자인 농월정은 지난해 불에 타 없어졌다. 농월정에서 2㎞ 더 간 지점에 동호정이 있고 이곳서 다시 2㎞를 더 가면 군자정과 거연정이 잇따라 나온다. 다만 대전-통영 고속도로 공사를 하면서 예전의 자연스러운 계곡분위기는 없어졌다. 동호정 앞의 큰 너럭바위인 차일암이 볼거리다.
글·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사진·박노익기자 noik@imaeil.com
사진:경남 거창군 북상면 월성계곡을 따라 이어져 있는 북상13경 중 제9경인 사선대. 바위와 물이 어우러진 이곳 주변이 월성계곡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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