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아의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를 매혹시킨다. 턱없는 환경에서 몸을 일으켜 어떠한 시련과 고통에도 굴하지 않고, 세상을 뒤덮은 불의와 사악함을 쾌도난마처럼 응징하고 마침내는 찬란한 신세계를 이룬다. 매혹적인 여인과의 멋진 로맨스도 곁들여지지만, 풍운아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또다시 광야를 향해 질풍처럼 달려 나간다. 그의 용기와 자부심 그리고 영웅적 능력은 모든 사람의 찬탄을 받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으며, 수많은 병사들은 기꺼이 영웅의 위대한 업적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어느새 영웅을 이루고도 남을만한 나이가 되어버린 오늘의 40대는 어떠한가. 남자가 자존심을 지키려면 돈이 많거나 딸린 식구가 없거나 해야 된다는데 한참 일에 재미를 붙일만한 30대 때 IMF를 겪었으니 돈이 많기를 하나, 부모 마지막으로 모시고 처음으로 봉양 못받는 세대가 될 것이라는 예측은 점점 맞아들어가는데 노부모 모셔야지, 신세대 자식들 키워야지, 움치고 뛸 자리가 없다.
게다가 무얼 그리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회에 발 디딘 이래 이날까지 한번도 잘했다는 소리 들어본 적이 없다. 툭하면 무슨 개혁이니 혁신이니 하는 말 잔치속에 없애버려야 할 나쁜 놈들이 되어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들이야말로 자기 인생의 작은 영웅이 아닐까. 화려하지도 극적이지도 않고, 한번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본 적도 없지만, 그래도 자기 길에서 지치거나 쓰러지지 않고 굳건하게 버티고 이겨내 온 세월이 훈장처럼 쌓인 세대다. 애들 키우고 어른 모시고 자기 일하는 게 무슨 자랑할 게 있느냐고 생각하지만, 세상을 뒤집어 영웅이 되어 보겠다며 살벌하게 만들어 놓곤 하는 세상을 정말 지탱해 주는 것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세상 모두 흔들릴 때도 자기 길을 우직하게 지키는 사람들. 모든 책임을 지고 힘든 결정을 해야하는 주인공이지만 항상 불만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애들 키우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늙으신 부모님 생각만 해도 가슴 아픈 이들은 고생만 하다가 어느덧 고운티 다 가시고 함께 늙어가는 마누라한테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늦은 밤 소주 한 잔에 시름을 털어버리는 우리 이웃들이 있어 세상은 그래도 살만한 곳 아닐까.
이상훈 범어연세치과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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