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있는 작품세계를 열어가고 있는 두 여성작가가 만났다. 현재 각기 다른 장소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작가 민경숙(33)씨와 조각가 강소정(26)씨. 민씨는 '주머니'라는 독특한 소재를 줄곧 고집해오고 있고, 대학원 졸업 후 8일까지 고토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갖고 있는 강씨는 '옷장'을 테마로 패션 일러스트를 조각작품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작가다.
5일 민씨의 세 번째 개인전(10일까지)이 열리고 있는 대구문예회관 전시실에서 만난 두 사람은 서로의 작품과 '여성주간'(7월 1~7일)을 맞아 대구에서 여성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평면'과 '조각'의 영역에서 조금씩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열어가고 있는 두 작가는 때로는 날카로운 문제의식으로, 때로 두터운 공감대로 맺어지는 '작업에 대한 열정'이 유쾌한 수다 속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젊으시네요? 작업이 차분하게 정리돼서, 나이 많은 분인 줄 알았어요. 보고싶던 전시였는데 뜻밖이에요."(강소정)
"패션 일러스트를 조각작품으로 표현한 게 독특하네요. 보통 조각이라고 하면 무거운 것이 대부분인데, 가볍고 경쾌해서 좋아요."(민경숙)
대구라는 공간에서 함께 활동하면서도 첫 대면인 두 작가는 비록 장르가 다르지만 여성주의적 소재를 활용해 섬세한 작품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닮은 꼴이다. 또 미술계에 대한 강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게 이들의 공통점. 미술대학에서 여학생 비율이 70% 이상인데 반해 현재 중견작가로 자리 잡은 사람들 중 여성 작가를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 많던 여성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그 이유로 이들은 남성 위주의 문화와 화가의 작업 환경을 꼽았다.
"한때 각종 공모전에 쫓아다니던 적이 있어요.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해도 '여류화가'라는 틀에 가둬 놓더라고요. 공모전에 입선하기 위해 인사하러 다니는 것도 싫어서 어느 순간 욕심을 버렸죠. 지치지 않고 제 속도대로 작업하고 싶어요."(민)
"여성 스스로가 '여류'의 틀에 갇히는 경우도 많아요. 그런 것도 문제지만 작품에 사용되는 재료가 너무 해로워요. 주변 여성작가들 가운데 몸이 망가진 사람이 많고, 딸만 낳은 사람이 대부분이에요. 재료가 인체에 유해한 성분이라는 거죠."(강)
기혼인 민씨도 역시 딸이 둘이다. 이에 대해 민씨는 스스로 해답을 찾았단다. 유성 물감 대신 황토, 쑥 등 천연염색으로 작품을 만들어 선보인 것. 인형, 모빌 등 아이들과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 방향을 바꿨다.
"작업 방향이 서서히 변했어요. 아기를 가지면서 아기에게도 해롭지 않은 천연소재를 찾게 됐죠. 맨발로, 맨손으로 감촉을 느껴도 해롭지 않은 이 작업이 재밌어요."(민)
대구에는 미술대학이 많고 작가들도 많지만 이들에겐 답답한 곳이다. 이에 대해 강씨는 곧 속내를 털어놨다. "친구들은 대부분 서울로 갔어요. 대구는 지역주의와 남성 중심주의가 강한 곳이어서 활동이 쉽지 않아요. 또 이번에 전시하면서 느낀 사실은 대구의 전시공간은 많지만 저처럼 열의가 앞선 경력 없는 작가가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은 거의 없다는 거예요. 전시회를 찾는 풍토도 희박해 전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저를 아는 사람들뿐이에요."(강)
"맞아요. 주변에는 아직 갤러리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이 많아요. 하지만 서울만 하더라도 그렇지 않죠. 낯선 사람들이 평가해주는 곳에서 작품을 앞세워 전시회를 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다음엔 서울에서 전시를 할까 해요. 서울엔 그나마 작가의 성별이나 경력보다 작품을 중요하게 봐주니까요."(민)
두 사람은 작가로서의 고민과 함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다. 조소를 전공한 강씨는 재료가 가장 큰 고민이란다. 가볍지 않으면서 자신의 작품과 맞아 떨어지는 재료를 발견해내는 것이 그의 당면한 숙제다.
반면 민씨에게는 한껏 여유가 느껴진다.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니까 작업이 너무 행복해요. 화가가 되고 싶다는 어릴적 꿈을 이뤘으니, 앞으로도 공기를 마시듯, 숨을 쉬듯, 밥을 먹듯 즐기면서 작업하고 싶어요."
최세정기자 beacon@imaeil.com
사진: 작가 민경숙씨(왼쪽)와 조각가 강소정씨가 5일 대구문예회관 제5전시실에서 서로의 작품세계와 미술계 풍토에 대해 진지한 속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상철기자 find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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