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성주군 가천면 법전리 이한섭씨 집

좋은 전원주택을 결정짓는 요건에는 아름다운 집 모양도 그러하지만 무엇보다 주위에 펼쳐진 비경이 중요하지 싶다. 여기에다 '자연사랑'이라는 집주인의 철학까지 담겨 있다면 금상첨화일 게다.

성주군 가천면 소재지를 지나 신계'용사 방향으로 들어선 지 30분. 이내 도로는 좁아 들고 가야산 산자락이 눈앞에 펼쳐진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을 산길을 따라가면서 "이런 곳에도 집을 지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 집주인이 누구일까 궁금증만 인다.

첩첩산중(疊疊山中). 성주군 가천면 법전리 이한섭(56)씨 집에 딱 어울리는 말이다. 가야산이 어미인 이름 모를 두 계곡이 서로 만나는 지점에 집이 살고 있다. 화려한 집의 필수요건인 '물'과 '산'을 모두 소유한 셈이다.

산을 좋아하는 이씨가 이곳을 발견한 것은 지난 1996년. 무엇보다 사람의 손때가 전혀 묻지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좋았단다.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가야산 뒤쪽으로 등산하다가 전혀 오염이 되지 않은 이곳을 발견하고 집 지을 생각부터 했지요."

적막강산(寂寞江山). 1km 이내에는 인가가 없다. 해가 지면 그 흔한 가로등 불빛도 보이지 않는 이곳이 무섭진 않을까.

"인간세상과 등을 진 순수한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는데 뭐가 무섭습니까. 불빛 대신 은은한 달빛과 총총한 별빛이 있는데요."

산 속에서 홀로 사는데 불편이 전혀 없을 수는 없을 터. "산을 좋아하는 저야 문제가 안 되는데, 아내가 무척 심심하고, 적적하다고 합니다. TV 앞에 살거나 1주일에 이틀 정도는 아내 혼자 대구집에 있다가 오지요." 전원주택은 무조건 사람이 없는 조용한 곳에 지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하는 대목이다.

귀틀한옥. 이씨의 집은 한옥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건축물인 귀틀집이다. 큰 나무를 '井'자 모양으로 엮어 지은 귀틀집은 구석기 유적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우리 서민들의 삶과 밀접한 집.

"어떤 집을 지을까 결정하기 위해 전국의 무수한 고택들을 답사했지요. 그 중에서 귀틀집이 가장 정감이 가더군요. 황토와 나무로 만든 귀틀집이 가장 친환경적이고 생태적이지요."

이씨는 귀틀집에 현대적인 공법을 가미했다. 황토벽돌을 쌓아 미장을 한 것. 나무 사이에 황토를 넣어 겨울이 춥다는 한옥의 단점을 피했다.

1층으로 된 집(40평) 구조는 간단하다. 집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생활공간인 거실을 중심으로 방 2개와 주방, 화장실이 자리하고 있다. 200평의 대지에는 수국, 치자나무, 소나무 등이 각종 다양한 돌들과 한데 어울려 살고 있고, 텃밭에는 심심함을 달랠 겸 심어놓은 채소들이 자라고 있었다.

천석고황(泉石膏 ). 이 집에는 자연을 지극히 사랑하는 이씨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정원 한편에 자리한 야생화 동산에는 이씨가 전국의 산을 오르면서 가져온 꽃들 천지다. 섬초롱, 흰민들레, 야생난, 나리꽃 등 50여 종의 야생화는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또 집안의 소품들도 죄다 자연이다. 벌레 먹은 구멍이 송송 난 밤나무를 책상으로 썼고, 나이테가 선명한 고목의 나무둥치는 의자가 됐다. 강가에서 주워온 대추나무는 선반으로 얹어졌고, 고택의 툇마루였던 떡버들나무는 TV 받침대가 됐다.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 속에 살려는 집주인의 생각이 죽은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게 한 셈이다.

우중연가(雨中戀歌). 특히 계곡 위에 자리한 집은 비 오는 날 풍경이 기가 막힌다. 산을 타고 내려오는 운무의 발걸음에 맞춰 노래하는 빗방울 소리는 없던 사랑도 생기게 한다. 이씨의 말대로 사이가 나빠진 연인이나, 싸움이 잦은 부부에게 꼭 추천할만한 풍광이다.

"인위적인 모든 소리에서 해방된 이곳에서 자연의 허벅지를 베개 삼아 누워 책 한 권을 읽고 있으면 산신령이 부럽지 않습니다."

사진·박순국편집위원 tokyo@imaeil.com

◇ 정용의 500자평

'나는 수풀 우거진 청산에 살으리라. 나의 마음 푸르러 청산에 살으리라... 세상 번뇌 시름 잊고 청산에서 살리라.'

김연준의 詩에 본인이 직접 곡을 붙인 '청산에 살리라'야 말로 두 물이 합해진 쌍계계곡 언덕 위에 봉화의 육송으로 집을 짓고 사는 이한섭씨의 전원생활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집주인은 55세가 되면 도시의 모든 생활을 정리하고 산골마을 한곳을 잡기로 젊은 날부터 계획을 했다. 기업의 CEO로 있던 이씨는 때를 맞아 모든 것을 정리했다.

대학시절부터 등산동아리에 있으면서 흰산(雪山)을 여러 차례 오를 정도의 산 사나이였다. 산이 있어 산에 오르니 매일 오르고 또 올라도 즐거움이 가득한 가야산 산허리에 귀틀집을 지었다. 통나무를 이어 세워 골조를 만들고 내부도 바깥의 귀틀집 모양을 그대로 만들어 방들을 만들었다. 넓디 넓은 거실바닥은 고택의 목재를 재활용했고, 한 평은 되어보이는 탁자는 떡버들나무, 밤나무로 책장의 칸 지름은 대추나무를 사용했다. 울창한 숲 속에 또 하나 살아 숨 쉬는 귀목들이다.

270˚의 데크는 주변의 풍광을 가슴속 깊이 스며들게 한다. 계곡물에서 나오는 음이온이나 피톤치드를 마시기 위해 삼림욕을 한다는데 소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가 가장 좋아 울창한 소나무 숲 옆에 터를 잡았단다. 지형을 그대로 이용한 연못, 야생초동산, 발효술을 위한 지하실방 등은 일품이다.

두 부부가 즐기기에는 너무 아까운 전원공간이라 별도의 방 2개를 손님들에게 제공하는 아이디어도 좋다. 누구나 전원주택 하나 멋스럽게 짓고 싶다면 아마도 이한섭씨 집은 모두다 탐을 내고 부러워할 수작임에 틀림없다. 단 하나 자연을 만끽하기 위해서 너무 호젓한 곳을 선택하다 보니 이웃이 없어 적막감을 줄 수 있지나 않을까 약간의 걱정도 있다. 올 여름 휴가철에는 우리 국토의 아름다운 곳을 여행하면서 나만의 삶의 아름다운 전원주택의 꿈을 가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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