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릴레이 이런 삶-이진숙 MBC 보도국 국제부장

"기자, 괜찮은 직업이에요"

14년전인 1991년, 걸프전의 심장부인 바그다드에서 날아다니는 폭격기와 섬광을 뿜는 포탄 등 전쟁의 참상을 카메라에 담아 생생히 보여줬던 이진숙(李眞淑·44) 기자가 어느덧 중년이 됐다. MBC 보도국 국제부장. 서울여의도에서 만난 그는 '겁없는 여기자' '간 큰 여기자'란 그때 이미지보다 '원숙한 어머니'의 이미지가 더 강했다. 여듧살 자식을 둔 엄마가 됐고 불혹(不惑)의 나이도 훌쩍 넘겼다.

"대구에 계시는 부모님을 뵈러 가끔 내려갑니다. 한달전에 남도초등 동창회에도 갔었습니다. 42명이 운동장에 모였는데 얼굴이 가물가물 했지만 선생님들도 많이 뵙고 참 좋았어요."

지금까지 너무 바쁘게 살아 주변을 챙긴다는 생각을 못했단다. 하지만 사십을 넘기면서 달라지는 것 같다고. "귀소본능일까요. 고향행 고속열차에 실려가는 횟수가 잦아져요. 지난해 신명여고 홈커밍 데이가 계기가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성주 월항면 안포동에서 자란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대구로 유학와 대학(경북대 영어교육과)까지 줄곧 대구에서 다녔다. 기자가 된 것은 우연이었다고 한다. 서부여중 교사로 재직하다 휴직한 뒤 서울외국어대 통역대학원을 다니던 어느날, 분식집에서 점심을 먹다 MBC-TV가 기자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저것도 괜찮겠다 싶어 응시했단다.

그의 기자관은 명쾌하다. "시신과 고아, 팔다리가 잘린 어린이 등 못볼 것을 많이봐서 그렇지 괜찮은 직업이에요. 정보의 최전선에서 먼저 알고 파헤치는 자체가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고, 결국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가게 만드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호기심이 많은 편이라는 그는 "관심의 끈이 닿으면 파헤치고 알아내려는 과정이 참 좋다"고 했다. 왜 혼자서 바그다드에 들어갔느냐고 했더니 그는 "녹음기를 트는 것 같다"면서 당시를 되짚었다.

"참을 수 없었습니다. 전쟁 현장에서 1천km 떨어진 요르단 암만에서 제가 본 듯 전쟁을 보도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다른 나라 기자들이 송고한 기사를 제가 취재한 듯 보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수치스럽고 괴로웠어요."

그래서 그는 6mm 카메라 하나를 들고 국경을 훌쩍 넘어버렸다. 회사에서는 난리가 났다. 아무리 취재해 송고해도 보도하지 않겠다는 최후통첩까지 왔다. 당장 바그다드에서 나오지 않으면 해고하겠다는 협박(?)도 받았다. "국경을 넘을 때 눈물이 줄줄 났습니다. 극한 상황이었어요." 그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걸프전 종군기자를 했고, 스타가 됐다.

지금 맡고있는 국제부장 일도 재미있다고 한다. "중간 게이트키퍼로 제한적이지만 제가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뉴스를 내보낼 수 있습니다. 그동안 빛을 못봤던 지역의 기사를 많이 발굴하려고 노력합니다. 미국 일본 중국 위주의 기사도 중요하지만 우리 스스로가 우물안 개구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아프리카 이란 등지의 소식도 필요합니다."

최재왕기자 jw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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