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잿밥보다 염불 먼저…

"앞으로 시청 직원들의 퇴직금을 40% 깎겠습니다."

선거로 당선된 시장이 제일 먼저 공무원들의 임금부터 줄이겠다고 하면 반응은 어떠할까? 지자체마다 공무원노조 등 단체가 만들어진 상황에서 이 같은 당선 공약은 쉽지 않을 터. 그러나 이런 공약을 관철시킨 단체장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무려 여섯 번이나 시장에 당선돼 현재까지 20년 넘게 시장자리를 지키고 있다.

1983년 당시 현직 시장을 간발의 차이로 누르고 41세로 시장에 당선된 도쿄 무사시노(武藏野)시의 쓰치야 마사타다(土屋正忠) 시장이 바로 그 주인공. 그는 인구 13만 명의 기초자치단체에 불과한 시 재정에 걸맞지 않게 민간 기업의 두 배에 이르는 공무원 퇴직금제가 재정을 압박하자 결단을 내린 것. 지자체가 '도산 없는 부실기업'이 되지 않기 위해서다. 당시 3천300여 개의 자치단체 가운데 월급과 퇴직금이 가장 높으면서도 행정능률은 낮았던 무사시노시를 그대로 방치할 수 없었던 것.

예상대로 공무원 반발은 거셌다. '퇴직금 인하 반대'를 외치고 '반동시장 몰아내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농성을 벌였다. 하지만 시장은 물러서지 않고 삭감약속을 관철시켰다. 한 발 더 나아가 근무시간에 공무원들이 이발관에 들러 이발하는 사례가 근절되지 않자 이발관마저 폐쇄해 버렸다. 시민들은 지지했다. 개혁 드라이브는 계속됐다. 이 같은 노력으로 무사시노시는 행정개혁 부문 1위와 여성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곳으로 선택되기도 했고 그는 '시장 중의 시장'으로 뽑히기도 했다.

그가 한국에 들렀을 때, 장기 집권의 비결을 묻자 "내 발로 걷자. 내 머리로 생각하자. 내 지갑에서 돈을 내자. 이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며 그를 만났던 충북대학교 강형기 교수는 자신의 저서 '지방자치 가슴으로 해야 한다'에서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도 민선자치가 출범한 지 10년을 맞았다. 지금 곳곳에서 10주년 기념행사들이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민선 3기 10년 성적은 어떠했나. 민선이란 '자치호(自治號)'를 제대로, 소신있게, 민의에 거스르지 않게, 각 지자체의 실정에 맞게 개혁적으로 운항해 온 단체장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세 번 치른 선거에서 당선자들은 '주민을 위해 몸 바치겠다'는 초심(初心)을 얼마나 지켰을까?

아쉽게도 우리의 민선호는 비리와 부조리로 얼룩진 모습이었다. 철마다 터져 나오는 인사비리나 공천을 둘러싼 잡음, 이권청탁과 뇌물수수 물의 등등. 그동안 우리나라 민선 단체장 3명 중 1명이 사법 처리됐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95년 이후 올 5월까지 광역 및 기초단체장을 역임한 525명 가운데 160명이 기소, 3명 중 1명(30.47%)꼴로 사법처리됐다. 특히 대구는 2명 중 1명(50%), 경북은 2.3명 중 1명(43.7%) 꼴로 전국 1위와 3위라는 오명을 기록했다. '민선 낙후지역'으로 손꼽힐 만하다.

살림살이는 어떠했나. 경북 23개 시·군의 재정자립도는 지난 10년 동안 더욱 나빠져 시지역 경우 36.9%에서 30.8%로 하락했고, 군지역은 18.7%에서 15.1%로 떨어졌다. 지역의 경제력이 낙후되고 있다는 증거다. 이러함에도 일부 단체장들은 고급 차량에 1억 원 가까운 연봉에다 많게는 수억 원대의 활동비를 쓰는 등 '껍데기 뿐인 지자체'에 아랑곳않는 모습이다.

그런 탓일까. 내년 단체장 선거가 1년 가까이 남았지만 벌써 경북의 고위 간부 공직자들은 선거바람에 들떠 있다. '염불보다 잿밥'이란 말처럼 너도 나도 출마 채비다. 마음은 콩밭에 있으면서도 의연하게 자리를 박차고 나서는 사람은 없다. 때문에 지난 10년간 경북도정을 이끌어 온 이의근 경북도지사의 레임덕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잖다. 행정 전문가라는 이 지사의 마무리 지혜를 기대해 본다.

공자는 후세에 이런 글을 남겼다. '옛 것에서 새 것을 배운다(溫故而知新)'와 '세 명이 가면 나의 스승이 있다(三人行 必有我師)'라고. 내년 선거를 원하는 공직자들은 더 이상 나라 곳간을 축내지 말고 승부수를 던지길 바란다. 고액 연봉에, 공천도 받고 선거에 당선되는 양다리 걸치는 치사한 태도를 이젠 버릴 때다. 취업난에 괴로워하는 젊은이들과 경북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후배 공직자들을 생각해서. 정인열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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