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옹기그릇이 깨어져도 이징가미는 남아서 흙 속에 뒹굴며 몇 백 년을 살아남는데… 언젠가는 한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나 주겠지…'(김주영의 소설 '달맞이꽃' 중에서). 이징가미. 질그릇의 깨어진 조각을 일컫는 순수 우리말이다. 이젠 거의 쓰이지 않지만 너무나 정겨운 말이다. 도자기 빚는 일을 배운 지 겨우 10여 년. 아직은 분에 넘치는 줄 잘 알고 있지만, 도자기에 관련된 우리말 이야기를 조금 해보고 싶어진다.
잘 알다시피 1920년대까지 남아 있던 전통 백자 가마가 일본 공장 제품에 밀려 거의 문을 닫았다. 그래서 우리 도자기에 관련된 말들까지 달라져 버렸다. '사기장'은 '도공', '사기그릇'은 '자기', '사금파리'는 '도편', '가마'는 '요'로, '흙가래'도 '코일'로 바뀌었다. 안타깝게도 그렇게 불러야 도자기를 좀 아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 이유가 뭔지, 누구의 책임인지, 알게 모르게 아름다운 우리말들이 장인정신과 함께 사라져 버린 것 같다.
내가 배운 바로는 도토(陶土)라고 부르는 질흙으로 빚어 그냥 구워 내면 질그릇이다. 질그릇에 잿물(釉藥)을 발라 구우면 오지그릇이요, 질흙 대신 백토로 빚어 구우면 사기그릇이 된다. 요즘의 도자기라는 말은 질그릇, 오지그릇, 사기그릇을 뭉쳐 부르는 말이었다. 항아리나 독은 일찍이 도깨그릇 또는 독그릇이라 불리었다.
만드는 재료와 관계되는 말로는 질그릇 만드는 흙을 질이나 질흙이라 하며, 질흙을 반죽해서 만든 덩어리는 꼬박, 물레 위에 꼬박을 놓고 모양을 잡는 것을 썰질, 흙가래나 흙테로 그릇의 몸통을 만들어 두드려 붙이는 것을 타렴질, 흙가래는 질흙을 가래떡처럼 만든 것으로 요즈음 코일이라 한다. 띠처럼 넓고 길게 만들어진 것이 흙테, 흙가래와 흙테를 합쳐 타렴이라 했다.
도자기를 만드는데 쓰이는 도구 이름도 다양했다. 곰방대는 손을 넣기 어렵게, 목이 긴 병을 만들 때 쓰는 나무 도구다. 가리새는 그릇의 몸통에 조각을 하는 데 쓰이는 꼬부라진 쇠다. 질그릇의 모양을 만드는 데는 흣대라는 나무쪽이 쓰이고, 굽을 깎을 때는 예새, 그릇의 속을 다듬을 때는 지질박이나 도개 같은 연장을 썼다.
질그릇의 겉을 다듬을 때는 수레가 쓰이고, 수레질 때 안쪽을 받쳐주는 연장을 조막이라 했으며, 질그릇에 빗살무늬를 새길 때는 알룩이라는 연장이 쓰였다. 꼬박으로 그릇이 다 만들어지면 애벌로 가마에 넣고 굽는데, 이를 오래 전부터 써오던 말은 애벌구이 또는 설구이이다.
잿물을 발라서 제대로 구워 내는 것을 마침구이나 잿물구이라 이르고, 가마에 넣고 굽기 위해서 그릇을 쟁이는 일은 재임이라고 했다. 높은 열을 받게 되는 마침구이 때는 물건들이 서로 달라붙지 않도록 진흙덩어리를 붙여 재임을 하는데 이 흙덩어리를 증, 증의 자국이나 그런 자국이 있는 그릇을 눈박이라 불렀다.
우리 도자기와 관련된 말들은 부서진 조각을 표현하는 데까지 아름답기 그지없는 말이 쓰였다. 사기그릇 깨진 조각은 사금파리, 질그릇 깨진 조각은 이징가미나 까팡이였다. 기와 부서진 조각은 기와깨미, 도깨그릇 깨어진 조각이 부삽 대신 쓰일 때는 도깨부등가리나 그냥 부등가리라 했다. 질그릇이 삭아서 겉에 나타나는 얇은 조각은 구적이라 불렀다.
아직도 도자기 만드는 일은 아득하다. 정겹고 아름다운 우리말들이 새롭게 느껴지는 건 그 세계에 깊이 들어가지 못했다는 방증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선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장인의 후예가 되어 보려고 그 아름다운 우리말 속을 오늘도 헤매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성명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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