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속 오늘-광해군 사망

"내가 죽으면 어머니 무덤 발치에 묻어달라."

1641년(인조 19) 7월 10일 유배지 제주도에서 쓸쓸한 인생을 마치며 광해군은 이렇게 유언했다. 1624년 서인 이귀·김류·최명길·김자점 등이 주도한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귀양 생활을 한 지 17년 만이었다.

광해군이 쫓겨난 이유를 실록에선 "배은망덕하여 오랑캐에게 성의를 베풀었다""민가 수천을 철거하고 궁궐을 지었다""동생을 죽이고 어머니를 폐했다"로 들고 있다.

광해군을 옹호하는 쪽의 얘기는 다르다. 당시는 중국에서 후금(청나라)이 세력을 얻어가고 있던 터, 광해군은 중립외교를 펼쳤다. 명의 지원군 요청을 들어주는 척하며 청나라와 내통해 실리를 취했던 것.

광해군은 임진왜란 이후의 피해 복구에도 힘썼다. 농지 개혁으로 백성들이 살길을 찾았다. 허준을 지원해 동의보감의 완성을 보게 하는 등 문화적으로도 많은 업적을 쌓았다.

영창대군 사사와 인목대비 폐비도 당쟁의 결과이긴 했지만 무조건 일어난 '패륜' 행위는 아니었다.

지배계층의 완고한 '명분' 선택의 대가는 3년 후 만주족에 의한 전 국토 유린(정묘호란)이었다.

▲1509년 프랑스 종교개혁가 장 칼뱅 출생 ▲1931년 노르웨이, 그린란드 합병 선언 ▲1995년 미얀마 아웅산 수지 여사, 가택연금 해제.

조문호기자 news119@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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