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유럽의 민담

유럽의 민담/막스 뤼티 지음/김홍기 옮김/보림 펴냄

모기불이 피어 오르는 마당, 평상에 누워 수많은 별을 헤아리면서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저절로 상상의 세계에 빠져든다. 여름밤의 아련한 추억….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옛날 이야기(民譚)는 비록 허구의 세계이지만 듣는 이들의 상상을 자극하며 뇌리에 깊이 각인된다.

대개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대개 막내 아니면 외아들, 외동딸이다. 주인공들은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도 시련을 딛고 일어서 끝내 행복한 삶을 산다. 유럽에서 구전되어 내려온 '신데렐라' 이야기와 우리나라 '콩쥐 팥쥐' 설화를 보더라도 서사적 진행 구조가 너무나 닮아 있다. 특정 창작자 없이 구전되어 온 수많은 민담들에서 어떻게 비슷한 특징들이 나타날 수 있을까. 이러한 특징들은 어디에서 기인했으며 동서고금,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기를 끄는 민담의 생명력과 매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민담연구가로 인정받고 있는 저자 막스 뤼티는 이러한 물음에 대해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민담을 문학의 한 형식으로 보는 문예학적 해석을 시도한다. 그 결과 민담을 민담답게 만드는 본질적 요인들을 독창적이고도 논리적으로 분석, 제시한다. 유럽의 민담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형식을 분석해 민담의 본질적 특성을 밝힌 이 책은 1947년 초판이 발행된 이래 유럽 학계에서 민담 연구에 관한 최고의 지침서로 평가받고 있다. 지금도 민담 연구자들과 학생들에게 민담 연구의 기본 문헌으로 널리 읽히고 있다.

저자는 민담이 신비롭고 흥미로운 까닭은 민담의 모티브 때문이 아니라 모티브를 다르는 방식에 있다고 보았다. 민담에 담긴 일정한 규칙에 주목,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민담만의 다섯가지 고유법칙으로 '일차원성', '평면성', '추상적 양식', '고립과 광범위한 결합', '승화와 세계의 함유성'을 제시하고 있다.

'일차원성'은 민담에는 피안과 현실이 하나의 차원에 있음을 의미한다. 피안세계와 접촉할 때 인간은 기묘한 전율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민담의 주인공은 마녀, 요정, 말하는 동물 등 피안세계의 존재들을 놀라지 않고 태연히 받아 들이거나 이들로부터 도움까지 받는다.

또 민담속 등장인물들은 입체성, 내면세계, 주위세계도 없는 형상들이며 시간 개념도 없는 존재로 묘사되는 '평면성'을 갖고 있다. 민담에서 감정이나 성격에 대해 직접 말하는 경우는 드물며, 성격과 감정은 행동으로 표현되고 다른 모든 것이 진행되는 동안에 평면에 투영될 뿐이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추상적 양식'은 구상적인 현실세계를 추상적으로 보여주는 민담의 본질적 특성을 총괄적으로 나타내는 개념이다. 민담은 구체적인 세계를 변형하고 그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변화시켜 구성 요소들에 다른 형식을 줌으로써 현실과 동떨어진 완전히 독자적인 세계를 만들어 낸다. '고립과 광범위한 결합'은 민담은 등장인물, 줄거리, 에피소드가 모두 고립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것과도 결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민담은 필연성 보다는 기적 등 우연성에 바탕을 두고 이야기가 전개되는 일반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승화와 세계 함유성'은 마법적 요소 등 민담은 온갖 임의의 요소들을 승화시켜 자신 속으로 받아 들일 수 있을뿐 아니라 실제로 인간 존재가 지닌 모든 본질적 요소를 반영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개념이다.

민담에서 온갖 놀라운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 까닭은 민담에 엄격한 다섯가지 법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담은 '인간의 생명과 존재 의미, 인생이 담긴 고도로 다듬어진 완전한 문학'이라는 것이 뤼티의 결론이다. 이경달기자 sar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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