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우리는 꼴통 보수인가?

몇 해 전'생활법률'이란 교양과목을 강의하면서 이 지역 학생들의'보수성과 폐쇄성'에 무척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당시 현안이 되는 여러 주제들, 예를 들어, 동성동본 불혼제도, 생명복제와 생명윤리, 외국인 노동자 및 동성애자들의 처우문제 등에 대해 매시간 발표와 토론을 했다. 그런데 발표와 토론을 들어보면,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내용이 대부분이었다. 학생들은 이 지역의 기성세대 혹은 언론들이 갖고 있는 보수적 경향을 그대로 재생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학생들에게 물어보았다.

"자네는 젊은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왜 그런 보수적 생각을 갖고 있는가?"

"어른들이 모두 그렇게 말씀하시던데요?"

"어른들의 말씀은 모두 정당한가?"

"…"

"그렇다면 자네가 생각하는'보수'의 의미는 무엇인가?"

"…"

필자는 정치적 담론으로서의 '진보'와 '보수'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 지역의 각 세대에 걸쳐 팽배해 있는'무비판적 태도'와 '폐쇄성'에 대해 비판하고자 한다.

한때 영화'친구'의 대사를 인용하여,"우리가 누고? 친구 아이가."란 말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친구! 소위 경상도 사내들의 진한 우정과 의리는 시대를 초월하여 어느 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미덕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 미덕이 이제는 전통에 대한 무비판적 태도와 지역적 폐쇄성으로 인해 오히려 이 지역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면 지나친 말일까?

주변에는 이 지역 출신 동료 교수들 가운데 서울출신 부인을 둔 이들이 적지 않다. 무뚝뚝한 경상도 사내와 다정다감한 서울내기 아가씨와의 결합은 결혼 상대로서는 이상적이라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고충이 여간 아님을 금방 알 수 있다. 다름 아닌 부인들의 부적응 때문이다. 물론 그 부인들의 사회적응 능력이나 노력이 부족한 탓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부적응이 이 지역의 지나친 폐쇄성과 배타성에서 기인하고 있다면, 그저 개인들의 탓만으로 간단히 치부해버릴 수가 있을 것인가? 다른 지역에서 온 이들은 말한다. "대구는 정말 살기 힘들어요."

아니 우리는 이렇게 편하고 살기 좋은 곳인데, 도대체 그들은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하지만 이제 그들의 말을 겸허하게 들어야 한다. 이제 더 이상은 우리가 태어나 살고 있는 이 지역이, 우리 고향이'한 가지 색깔'뿐인데다 사방팔방으로 꽉 막힌'분지'여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우리 지역이 그 전통과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다양하고도 개방적 모델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인가?

여러 문제점과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전통을 재해석하고 재인식하려는 노력이 선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지역은 유교적 전통과 미풍양속이 강한 곳이고, 또 비교적 잘 보존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전통이 현대적 의미에서 재해석되고 재인식되지 않는다면, 우리 지역은'과거의 전통'에 사로잡혀 더 이상 현실의 문제들을 극복할 수도, 또 미래의 발전을 모색할 수도 없다. 16, 17세기의 가치기준을 21세기의 오늘날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가 다른 지역으로부터'보수적'이라고 비판받고 있는 주된 이유는 전통에 대한 무비판적·맹목적 수용태도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만일 우리 지역의 고유한 전통과 미풍양속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성찰을 통하여 현실의 다양한 문제점을 극복하는 동시에 미래에 대한 견실한 대안을 제시하는 정치적·학문적 도구로써 소위 '보수주의'를 활용하고 있다면, 그 누가 이 지역의 보수를 비판하겠는가? 불행하게도 이 지역의 보수주의는 한 가지 색깔만 띠고 있어 다양한 견해를 수용하지 못하는 한계를 안고 있다. 각계각층의 다양한 견해가 자연스럽게 교환되지 않고서는 이 지역의 보수주의는 극복될 수 없다. 이 지역의 전통도 살리고, 보수도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제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고민하고 토론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채형복 영남대 교수 법과대학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