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성 동성애자들 세계를 살짝 엿보니

"우린 보통 인연과 달라요! 헤어진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죠."

13일 새벽 1시 대구 수성구 한 동성연애자 전용바. 아령(가명·28·여)씨가 자신의 파트너인 비니(가명·26·여)씨에게 속삭인 말이다. 2년전 엑스존이라는 인터넷 동성애 사이트에서 만난 두 사람은 주변의 곱지않은 시선때문에 동성애를 숨긴 채 조심스레 사랑을 키워왔다.

둘은 "성적 취향이 다를 뿐인데 사회적 인정을 받지 못해 늘 뭔가 숨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싸여있다"고 털어놨다.

아령씨는 여성을 사랑하는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인식한 뒤 5년만에 비니를 만나 사랑하게 됐다는 것. 비니씨는 "아령 언니를 만나 삶의 새로운 기쁨을 얻었으며 성적 만족감도 크다"며 "서로 섬세한 감정, 세심한 배려를 하기 때문에 남성에게서 느낄 수 없었던 기분을 느낀다"고 말했다. 아령씨는 "비니가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리고 배신한다면 같이 죽겠다"고 고백했다.

대구의 ㄱ고등학교 1학년 레즈비언 이모(16)양. 이양은 지난달 자신이 사귀고 있는 한 언니(18) 때문에 학교 수업에 지각을 했다. 자취를 하고 있는 이들은 언니가 몸이 좋지 않아 이양에게 학교에 가지말고 자신을 간호해주길 원했기 때문. 그는 "언니는 남편역할, 저는 아내역할을 하며 부부같이 살고 있다"고 했다.

담임교사는 "이양이 1시간 이상 늦게 와 이유를 물어봤더니 '사귀는 언니가 있다'며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밝혔다"며 "처음에는 너무 놀랐지만 성적 취향을 이해하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친절히 상담해주려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교사는 "최근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면서 학교에도 커밍아웃(성정체성 밝히기)하는 학생이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구지역 모대학교 2학년 최모(20)양. 그는 최근 자신의 성 정체성 때문에 고민 중이다. 어느 때부턴가 멋있는 남자보다 예쁜 여자를 보는 순간 마음이 설레고, 자신도 모르게 좋아하는 여자의 이름을 연습장에 반복해 적는 등 동성애를 그리고 있었기 때문. 최양은 한 인터넷 사이트 동성애 상담코너를 통해 자신의 문제에 대해 답변을 받은 뒤 자신의 감정에 충실히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직장인 오모(36·여·수성구 수성동)씨. 오씨는 "동성애자는 일반인들이 이성친구를 만나는 것에 비해 진정한 사랑을 찾을 기회가 적다"며 "이 때문에 한번 커플이 형성되면 그만큼 서로에게 집착하게 되고 다른 사람에게 눈을 돌리는 것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등 엄청난 질투와 극도의 배신감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한국레즈비언 상담소에 따르면 최근 동성애자들이 부쩍 늘어, 국민 1천 명 당 2, 3명은 동성애자로 볼 수 있으며 전국적으로 수만 명, 대구지역에도 수천 명에 이를 것으로 추측했다.

김찬영 상담원은 "국내 대학은 이미 이들을 위한 동아리, 문화축제가 있는 등 동성애자들이 보호받고 누릴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며, 중·고생 사이에도 동성애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있는 경향"이라고 전했다.

권성훈기자 cdrom@imaeil.com

'해피 2반(happy2van), 러브서프(lovesurf), 티지넷(tgnet), 니아까(Niagga)….'

국내 동성애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인터넷 주요 사이트만 20여 개에 이른다. 카페모임 등 은밀히 이뤄지는 그들만의 커뮤니티는 수백 개에 달할 것으로 관측된다. 그들은 주로 이곳에서 채팅을 통해 접촉하고 오프라인에서 다시 만나 연인관계를 형성한다. 12일 대구에서 드러난 레즈비언 치정사건도 당초의 만남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서였다. 이들은 세이클럽에 그들만의 '방'을 개설한 후 정기적 만남을 가지고 동거생활까지 들어갔던 것.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남과 남', '여와 여' 등 대화방이 있고 '나랑 연애할래요?', '연애, 섹스 말하기', '대담하게 말하기', '용서, 미안, 나의 고백' 등의 코너가 있어 서로가 가슴속 깊이 고민하던 문제들을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다.

이들 주요 사이트들의 회원수는 3천여 명에 이르며 하루평균 300∼500명이 접속해 온라인 상에서 만나고 각종 정보를 주고 받는다.

회원 가입에 대해서는 대부분 사이트가 먼저 실명과 주민등록번호을 밝혀야 하며 자신의 성정체성, 파트너 여부, 관심분야 등을 자세히 기입해야 한다. 또 오프라인 회원이 되려면 공개모임을 통해 자신의 존재와 성정체성의 진실성을 인정받아야 연인관계로 발전이 가능해진다.

일부 사이트는 '100문 100답'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정규회원 등록이 가능하도록 하고 개별모임보다 정기모임이나 번개팅(모임)을 선호하며 일반인들의 무분별한 접촉을 막고 있다.

이들이 이처럼 조심스럽게 사이트를 관리하는 이유는 그동안 각종 폐해가 잇따랐기 때문. 지난해 말 서울에서는 프리랜서 기자라며 10대 레즈비언들에게 접근, 동성애 및 인권 관련 기사를 쓰려 한다며 여관으로 불러내 강제 성폭행했는가 하면 부산에서는 동성애자가 아닌 남자가 '나도 레즈비언'이라며 속여 사귀자고 한 뒤 감금하고 성폭행하는 등의 사건이 수차례 발생했던 것.

또 동성애자들을 혐오시하는 일부 네티즌들이 이들 사이트에 들어와 입에 담지 못할 온갖 욕설과 함께 이들을 비난하는 글로 게시판을 도배하는 사례도 잦다.

한국동성애연합 한 관계자는 "동성애자들이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자신들만의 복잡한 승인절차를 거쳐 비공개로 운영되는 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가 이들을 용인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며 "사회적으로 이들에 대한 보다 폭넓은 이해와 담론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성훈기자 cdro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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