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동성애

우리 역사 속 동성(同性)연애의 무대는 대부분 왕실과 궁궐 주변이었다. 여자처럼 행동하고 옷 입기를 즐겨한 신라 왕이나 미소년 근위대를 만들어 그들과 즐긴 고려 왕의 기록도 있다. 조선조엔 세자비가 시녀들을 처소로 불러들이다 화를 입은 기록이 나온다. 그렇다고 동성애가 왕실 주변의 전유물은 아니었을 터다. 왕실 위주의 역사 기록 때문이었을 뿐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도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있어 왔어도 동성애는 언제나 시대의 이단이었다.

◇ 서구 여러 나라에서는 동성애를 인정하는 추세다. 동성끼리의 결혼을 인정하기도 하고,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불이익과 차별을 당하지 않게 한다. 어둠 속에서 양지로 이끌어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시각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성 전환 수술을 통해 성을 바꾸거나 동성애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연예인도 방송 프로그램에서 제외되지 않고 있다. 동성애 인터넷 사이트도 다양하고, 찻집 등 그들만의 공간이 늘고 있다.

◇ 몇몇 대학에는 동성애 동아리도 생겨났다. 이미 십 년 전의 일로 대학가 동성애 서클의 시발점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동성애를 거부하는 기독교 선교사가 세운 명문 대학에서였다. 동성애가 확산되면서 호모, 게이, 레즈비언 외에도 이들을 지칭하는 트랜스젠더, 바이 섹슈얼, 커밍아웃 등 용어도 다양해졌다. 이 반은 일반(一般)과 구별되는, 서울 낙원동에서 탄생한 용어라 한다.

◇ 고교생, 대학생, 직장여성 등 여성 동성연애자 8명이 자신들의 질서를 무너뜨렸다는 이유로 동거 여성을 한 달 간 감금하고, 집단 고문과 성폭행을 한 사건이 발생했다.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알게 돼 커플을 맺은 이들은 자신들 외의 상대와 성관계를 가졌다며 피해자에게 집단으로 가혹 행위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잔학 행위에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는 수사 후일담도 들린다.

◇ 성(性)은 개인의 자유이나 종족을 잇는다는 사회적 의미가 강하다. 그래서 이성 간이 아닌 동성끼리의 사랑은 여전히 사회 질서에 어긋나는 행위로 여겨진다. 음양의 상호 작용을 중시하는 동양 전통사상과도 어울리지 않고, 성서의 가르침도 거역하는 행위다. 소수를 보호하고 소수의 권리를 중시하는 사회 추세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그들을 정상으로 보지 않는 까닭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서영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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