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간담췌장 환자 여임숙씨

"훌훌 털고 아이들 곁으로 가고 싶어요"

한 달 전 장을 보기 위해 서문시장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한 100m쯤 가다 쉬고, 그만큼 걸어가다 계단에 걸터앉아 쉬곤 했습니다. 제 이름은 여임숙(36·중구 대신동). 척추장애에 시각장애를 함께 가지고 있지요. 걷고 쉬고를 반복하는 것은 조금만 걸어도 숨이 꽉 차 오기 때문입니다.

어느 행상을 피하려다 넘어졌습니다. 주위의 도움으로 병원까지 옮겨졌고, 무릎이 깨진 것보다 제 간 속에 그 절반 크기의 돌이 꽉 차 있다는 말에 더 놀랐습니다. 간담췌장. 의사선생님은 조금만 늦었더라면 손 쓸 수도 없었을 거라며, 하늘이 큰 도움을 준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유를 알겠더군요. 왜 먹을 것 앞에서 자꾸 입덧(?)을 했는지, 왜 변기통을 붙잡고 하루에도 몇 번씩 구토를 했는지. 단지 비위가 약해서일 거라 생각했는데….

길에 엎어져 있을 때 남편 생각이 왈칵 났지만 전화를 할 수도, 거기까지 나와달라고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제 남편은 저보다 더 심한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에 혹 달려오다 같은 사고라도 당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벌써 입원 한 달째. 우리 민우(13), 재랑(5), 지은(3·여)이가 참 보고 싶지만 병원으로는 못 오게 합니다. 누굴 닮았는지 면역력이 너무 약해 1년 내내 감기를 달고 사는 아이들이거든요. 재랑이는 지난해 백내장 수술까지 할 정도로 시신경이 좋지 못합니다. 장애가 유전되는지 모르겠지만 그게 저희 때문이라면 미안해서 어떻게 살지요?

제 남편 김진희(49)씨. 6년 전 안마학교에서 그를 만났지요. 열세 살이라는 나이 차가 무색할 정도로 전 첫눈에 반했습니다. '젊은 부처님'. 제가 그에게 붙여준 별명입니다. 저보다 설거지를 잘하고, 저보다 빨래를 잘 개는 착한 남편. 저보다 요리까지 잘해서 얄밉기도 하지만 하루에 몇 마디 않는 무뚝뚝한 이 남자를 사랑합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제가 아무리 약을 올려도 화를 내지 않습니다. 요즘 그의 곁에서 활처럼 구부러진 등을 보인 채 누워만 있는 제가 너무 미안해 속상합니다.

앞을 볼 수 없는 아픔을 아실는지요. 세상이 온통 까맣다는 것보다 그 까만 세상 속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 더 힘듭니다. 아이들이 소소하게 아파도 병원으로 데려가지 못하고,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며, 여름에 정부에서 받는 보조금을 모아놔야 겨울을 날 수 있는 형편. 그래서 시각장애인은 보통 안마일을 하는데 그것도 지난해부터 일자리가 크게 줄어 우리 둘 다 실직자가 됐습니다. 제 남편은 나이가 많아 더 안 된다고 합니다.

참 염치없습니다. 제 가족에게, 그리고 이웃들에게. 14평이나 되는 방을 월 20만 원에 내준 주인아저씨부터, "장보러 가는데 굳이 둘씩이나 갈 필요 있냐"며 제 장까지 봐주던 아줌마. 어딜 가든지 늘 부축해주는 자원봉사자분.

벌써 수술비며 병원비만 400만 원이 훌쩍 넘었습니다. 남편의 한숨소리가 복도 끝에서부터 느껴집니다. 갑자기 재랑이, 지은이의 '곰 세 마리'가 듣고 싶네요. "엄마, 많이 아파? 우리가 노래 불러줄게. 기도도 해줄게"하며 소리소리지르는 그 목소리가 너무나 그립습니다. 훌훌 털고 일어나 그들 곁으로 가고 싶어요.

저희 '이웃사랑' 제작팀 계좌번호는 대구은행 069-05-024143-008 (주)매일신문입니다.

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

사진: 시각장애인 김진희씨가 간담췌장 등을 앓고 있는 부인 여임숙씨를 돌보고 있다. 이들 부부는 불경기로 안마일을 못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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