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성인범죄 흉내내는 청소년들

"아저씨들이 발가벗은 채 도망가기 바쁘더라구요."

13일 오후 10대 또래들과 성매매를 가장해 강도 짓을 벌인 혐의로 수성경찰서 형사계에서 조사를 받던 고교생 이모(15·서구 평리동)군. 이 군은 함께 범행을 한 여고생이 전날 아침 교통사고로 숨지지 않았다면 붙잡히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인터넷 채팅방에 '쪽지'를 놓으면 쉽게 아저씨들과 만날 수 있었고 성매매 사실을 협박하면 순순히 금품을 내놓았습니다. 신고는 꿈도 못 꾸더군요." 오렌지색 머리에 수갑을 찬 이 군은 고무신 발을 비비며 멍하니 뇌까렸다.

10대 비행 청소년들의 범행 수위가 성인 범죄를 뺨칠 정도로 막나가고 있다.

유흥비나 가출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한 가벼운(?) 절도 수준이 아니라 여럿이 치밀한 계획을 짜고 강도상해, 특수강도 등 간 큰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이 군처럼 인터넷 채팅을 통해 성매매를 원하는 남성들은 최근 삐딱한 10대들의 '손쉬운 표적'이 되고 있다. 청소년들의 말대로 몸도 아끼고 돈도 챙기고 붙잡힐 위험도 작기 때문이다. 이날 경찰에 붙잡힌 이군 등 남녀 고교생 3명도 일주일 전 가출한 뒤 PC방 등에서 지내다 생활비가 떨어지자 TV에서 본 범행장면을 따라했다고 말했다.

'꽃뱀'을 가장한 10대 강도들이 활개치는 바람에 일부 인터넷 채팅 사이트에는 '이런 식으로 당했다'는 식의 사례가 줄을 잇고 있다. 여성이 여관에서 '먼저 샤워하라'며 등을 떠밀거나 인터넷에 '2대 1 원함' 처럼 적극적으로 성매매에 나서는 경우 십중팔구 청소년 혼성강도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 이들이 남성의 지갑을 털더라도 신고가 없으면 처벌할 수 없다.

대구에서는 올 초 10대 남녀 6명이 미리 짜고 원조교제를 미끼로 남성을 유인한 뒤 대기 중이던 일당이 들이닥쳐 돈을 빼앗은 혐의로 붙잡혔고, 얼마 전에도 가출한 10대 소녀들을 감금, 성매매를 시키고 수천만 원대의 화대를 가로챈 10대들이 붙잡히기도 했다.

또 앞서 5월초에는 금호강·낙동강 다리 밑 텐트에서 혼숙하며 대구·경북 일대에서 100여 차례의 절도 행각을 벌인 10대 남녀 8명이 구속됐다.

대구경찰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 대구지역 청소년 범죄는 2천100여 건으로 지난 한 해 4천800여 건과 비슷한데 이중 절도·폭력은 상대적으로 줄어든 반면 강도 등 강력범죄는 늘어나는 추세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청소년 범죄는 죄책감이 희박한 것이 특징"이라며 "핵가족 속에서 부모의 관심이나 사회규범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데 원인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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