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소리에 제가 미쳐 득음을 하면 부귀보다도 좋고 황금보다도 좋은 것이 이 소리속판인 것이여…."
영화 서편제에서 왜 소리를 하느냐고 묻는 딸에게 소리에 미친 아버지가 들려주는 말이다. '제 소리에 제가 미쳐…'. 가끔 이런 경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세계적인 홀에서 공연 도중 자기의 소리가 자신을 휘감고, 홀을 휘감고 울리며 말로만 듣던 경지를 알았다는 명창, 미친 듯이 북을 치다 보면 북도 없고 나도 없이 오직 소리만이 울리는 경지를 알 수 있다는 어느 고수, 배구선수 중에는 스파이크를 하려고 점프한 순간 시간과 공간이 정지하고 우주 전체가 한눈에 보이는 경험을 했다는 고백을 한 사람도 있다.
이것이 이 사람들만의 이야기일까. 어느 분야이든 최고의 수준에 가면 전설처럼 들리는 이런 경지가 있지 않을까. 이곳에서 비로소 인간은 최고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것 아닐까.
영화 '서편제'에서는 평생을 바치고 딸의 눈까지 멀게 하고서도 득음의 경지에 간 건지 안 간 건지 확실히 나타나지 않고 있다. 아마 그럴 것이다. 대개의 경우 평생을 바쳐 자기 길을 가고도 최고의 경지에 도달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꼭 득음을 해야 되나. 제 소리에 제가 미치면 득음은 꼭 도달해야 하는 목표가 아닌 나침반의 역할을 하는 것 아닐까. 제 소리에 제가 미치더라도 수시로 달아나려고 하는 마음을 다잡아 주는 나침반. 그 길로 가는 것이 참으로 멋있게 사는 것이라는 것을 깨우쳐 주는 길잡이. 절대 한꺼번에 이루어지지 않는 머나먼 길의 동반자.
최고 경지에 간 고수의 움직임은 부드럽고 아름답다. 어느 분야이든 그들이 움직이면 향기가 난다. 나는 어느 세월에 그 경지를 구경이나마 해 볼 수 있을까. 내가 가는 길은 그쪽 방향이 맞기는 한 건가. 무엇보다 나는 내 일에 정말 미치기는 했는가. 오늘 따라 온 세상을 붉게 물들이며 저무는 노을을 보며, 고수의 경지를 생각해 본다.
범어연세치과원장 이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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