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재발견'은 어두운 등잔 밑을 더듬어보자는 것. 대구에 수십년을 살면서도 주말만 되면 '어디로 가지?'라며 고민하는 사람, 꽉 막힌 도로를 보면서 '두번 다시 주말 나들이 안간다'며 굳게 다짐해놓고 막상 주말이면 다시 시외 도로를 달리고 있는 사람, '주말 나들이는 돈 있고, 시간 있는 사람 몫'이라며 TV를 끼고 사는 방콕족. 몰라서, 없어서, 귀찮아서는 이제 변명이다. 동네 김밥집에서 파는 1천 원짜리 김밥 두어줄 사들고 카메라 챙겨서 가족과 함께 옆 동네로 가보자.
만촌네거리에서 출발하자. 달구벌대로를 따라 경산쪽으로 5분 남짓 달리다보면 연호네거리가 나온다. 고가도로인 범안로가 가로지르는 곳이어서 찾기 쉽다. 여기서 좌회전. 고모 쪽으로 빠지면 된다. 고가도로를 왼쪽에 끼고 몇 분 달리면 막다른 길이 나오고 여기서 다시 좌회전, 중앙선도 없는 좁은 도로를 따라 조금만 가면 오른쪽으로 고모역이 나온다.
전형적인 시골 역. 대구광역시에 이런 조그만 역이 있다는 것도 색다른 느낌이다. 여기도 사람이 오느냐고? 물론이다. 이상철 부역장은 "발매기는 비록 구형이지만 KTX 예매까지 된다"며 목소리에 힘을 싣는다. "4명이 마주 보는 동반석 예약 빼고는 모든 열차표를 살 수 있습니다. 많을 때는 하루 50명도 넘게 오는걸요."
하지만 말 속에 사람 그리운 내음이 물씬 풍겨난다.
그 흔한 커피자판기 한 대 없지만 대합실 나무의자에 잠시 앉아 추억도 더듬고 역사 왼쪽에 있는 '고모역' 시비 앞에서 기념 사진도 한 컷 찍어보자. 지난 2월18일 늦겨울 비가 촉촉히 내리던 날 제막된 이 시비는 석공예 명장 윤말걸 옹이 만들었다.
오던 길을 따라 다시 차를 몰고 몇 분을 달리면 오른쪽에 팔현마을로 빠지는 길이 나온다. 한 때 이 길은 '가고파 도로'로 불리웠다. 가천-고모-파크호텔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 지금은 고모로, 팔현길로 바뀌었지만 가고파란 이름이 훨씬 멋스럽다.
마을 길로 접어들어 100m 남짓 가면 한창 공사 중인 팔현배수펌프장쪽으로 길이 나있다. 한 때 이 마을은 장마철만 되면 금호강물이 범람하는 상습침수지역이어서 강둑을 높이 쌓고, 배수펌프장도 만들었다.
막힌 길 오른쪽에 탈출로가 보인다. 팔현마을의 자랑거리인 포도밭으로 향하는 길.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만큼 좁은 콘크리트 농로다. 사실 이곳은 소개하기가 부담스럽다. 자칫 팔현마을 주민들에게 피해가 갈까 싶어서다. 당부의 말씀, 행여 마을 앞 도로가 복잡하면 미련 갖지 말고 그대로 돌아나오고, 포도 등 농작물은 눈으로만 감탄할 뿐 절대 만지지 마시길.
포도밭 사이 길을 300m 쯤 달리면 목적지 금호강둑이 나온다. 둑 위에 올라서면 금호강이 한 눈에 들어온다. 같은 대구 하늘 아래, 바람이 이렇게 다를 수도 있다. 강 건너는 아파트 숲이지만 둑 아래는 자연 그대로다.
금호강을 따라 우뚝 솟은 방천길은 2km 남짓. 배수펌프장 쪽으로 보면 오른쪽 둔치에 빼곡히 들어선 숲이 보인다. 얼추 10m가 넘어보이는 나무들이 일제히 하늘로 키재기를 하고 있다. 과장을 조금 보태 수천그루는 족히 될 성 싶다. "20, 30년쯤 됐을 겁니다. 하천 부지를 대여한 적이 있는데 당시 은행나무 묘목을 심었다고 하더군요. 그 뒤 주인이 나무를 캐가지 않아 그렇게 자란 것이죠." 호기심이 발동한 기자의 전화 문의에 수성구청 박춘수 문화관광담당은 이렇게 답했다. 물길을 막아선 것도 아니어서 뽑아낼 계획도 없다고 했다.
맑은 날 이곳을 찾았다면, 그리고 배수펌프장을 지나 둔치로 내려가는 길이 말라있다면 한번쯤 둑 아래로 내려가보는 것도 좋다. 길이 엉망이기 때문에 섣불리 내려섰다가는 진창에 빠질 위험도 있지만 둔치에 내려서서 보는 금호강은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새들(아마 왜가리나 백로가 아닐까 싶다)이나 구석구석 손바닥 만한 땅에 마치 퀼트 조각처럼 들어선 텃밭을 구경하는 것은 덤. 해바라기, 땅콩, 호박, 들깨, 옥수수 등등 거의 밭작물 전시장이다. 낯선 이의 출현에 경계의 눈빛을 보이던 한 농부는 "구경하는 건 좋지만 손 대지는 말아달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둑길 따라 산책도 하고, 텃밭 구경하며 철새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반나절 나들이 코스로는 부족함이 없다. 김수용기자 ks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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