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형소법 개정때 검찰수사 새 풍속도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가 당초와 달리 검찰 요구안을 상당 부분 수용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마련함에 따라 앞으로 검찰이나 경찰의 수사·조사 과정과 법정 풍속도는 큰 변화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조직폭력배 두목 김모(가명)씨가 유흥업소 업주들을 갈취하고 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검찰에 소환, 조사를 받았을 경우를 가정해 보자.

◇조사과정 기록제 도입

검찰은 김씨가 언제 조사실에 들어와 몇 시간 동안 조사를 받고 몇 시에 귀가했는지를 반드시 기록해야 한다. 검사는 김씨에게 "진술을 거부할 수 있고, 거부해도 불이익이 없다"고 말하고, "알았다"는 대답을 들어야만 조사를 할 수 있다. 이때 김씨는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대기하고 있는 변호인의 도움을 받아 신문에 응할 수 있고, 조사 후 진술과 조서 내용이 다르다면 이의 제기를 할 수 있다. 검찰은 김씨의 이의가 있으면 조서를 수정해야 하고, 원본과 함께 보관해야만 한다.

◇영상조사

검찰은 김씨가 조서 내용을 부인할 경우에 대비해 영상녹화를 할 수 있으나 김씨가 촬영에 반대한다면 녹화 자체가 불가능하다. 당연히 법정에 증거로 제출할 수도 없다. 다만 김씨의 동의를 얻었거나 변호인이 동석한 상황에서 촬영하는 등 엄격한 요건을 갖췄을 경우 법정에서 김씨가 조서 내용을 부인하고 법정 증언으로도 유죄 입증이 어려울 때는 (영상녹화물을)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

◇수사의 어려움

김씨는 변호인의 도움을 받아 자신에게 유리한 진술만 하고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수 있어 수사 진척이 안 된다. 특히 피해자들이 보복이 두려워 진술을 꺼리는 조직폭력배에 대한 증거 확보는 어려움에 봉착할 가능성이 크다. 검찰은 당사자끼리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뇌물, 배임 수·증죄 등도 수사 자체가 난관에 부딪힐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피의자 인권은 신장

김씨가 수사과정에서 받는 인권 침해 소지는 확실히 줄어든다. 진술 자체를 거부해도 불이익이 없으며 불리하다 싶으면 조사 과정에서 변호인의 입회를 요구해도 된다. 분통이 터질 노릇이지만 뚜렷한 물증 확보를 못한 검사나 수사관으로선 달리 방법이 없다. 그러나 김씨에게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인권은 누가 보호하느냐는 점이 심각한 문제점으로 남는다.

◇피의자 신문조서 증거 채택 여부

적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조서가 작성되고, 변호인이 조사 과정에 입회한 상태에서 영상물을 통해 진술 내용이 믿을 만하다고 판단되면 김씨가 법정에서 조서 내용을 부인하더라도 신문조서는 증거로 쓸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을 거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변호인 활동 범위 확대

변호사는 사건 초기 단계부터 수사나 조사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는 형사 사건 변호인으로 선임되면 수임료를 받고 서면 변론에 의존해 왔다. 하지만 공판중심주의가 강화되면 서면 변론서 작성보다는 사건의 실체 파악과 피의자, 또는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 확보에 중점을 둬야 하기 때문에 변호사의 활동 폭이 커질 전망이다. 덩달아 형사 사건의 경우 통상 300만~500만 원선인 수임료와 그에 약간 못 미치는 성공보수비가 오를 수밖에 없어 의뢰인들의 부담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돈이 많으면 유능한 변호사를 대거 영입, 무죄를 받거나 형량이 낮아질 가능성이 커지지만 돈이 없는 서민들은 소송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할 수 있다.

◇법정 모습 변화

재판장은 증거 조사 시작 전 검사에게 김씨에 대한 신문을 하게 하던 기존 절차를 따르지 않고 증거 조사가 끝난 이후에 검사 신문을 하게 한다. 지금까지 검사가 법정에서 피고인에게 호통을 치며 재판장처럼 매섭게 추궁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으나 이제는 흘러간 과거다. 이런 과정을 거쳐 재판장은 진술 조서를 증거로 쓸 것인지, 검사 신문 내용을 인정할 것인지를 결정해 판결에 참고하게 된다. 피고인이 과거보다 유리한 입장에서 재판을 받게 된 것만은 사실이다. 재판장의 영향력도 이전보다 강화된다.형사소송법 개정안은 사개추위와 검찰 간 합의를 거쳤기 때문에 정기국회를 통과하면 곧바로 시행된다.

최정암기자 jeonga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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