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울의 향토인들] 향우회-(5)의성향우회

1邑17面…面數만큼 인물도 많지요

의성(義城)은 대구·경북 인재의 산실이었다. 의성읍과 △단촌 △점곡 △사곡 △춘산 △가음 △금성 △봉양 △비안 △구천 △단밀 △단북 △안계 △다인 △신평 △안평 △안사 등 경북도내에서 가장 많은 18개 읍·면으로 구성돼 있어 의성은 뛰어난 인재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경상북도의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는데다 중앙고속도로가 관통하면서 안동이나 대구, 서울 등 대도시로 가기가 편리해지는 등 오지에서 교통요지로 변했다. 그러나 1차산업 외에는 별다른 산업기반이 없어 65세 이상 노년층 인구가 25%를 넘는 초고령사회로 가장 먼저 진입하는 등 산업화의 부작용도 심각하다. 90년대 초반 12만여 명을 넘던 인구도 2004년말 6만6천 명으로 급감했다.

그럼에도 고향을 떠나 각계에서 움직이는 의성사람들의 활동은 활발하다. 정치권에서는 강재섭(姜在涉)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대권후보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을 정도로 의성사람을 대표하고 있다. 관계에서는 정상명(鄭相明) 대검차장이 차기 검찰총장에 근접해 있다. 정 차장은 사시 17회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동기. 참여정부 출범 이후 법무차관과 대구고검장을 지내면서 경력을 쌓았다.

경제계에서는 이렇다 할 기업인들이 많지는 않다. 이들 중에서는 부산을 기반으로 주택건설을 해오다가 수도권에 진출하는 데 성공하면서 일약 건설업계의 기린아로 떠오른 반도주택 권홍사(權弘司) 회장이 돋보인다. 권 회장은 연초 실시된 대한건설협회 정기총회에서 전임 마형렬 회장을 제치고 대한건설협회 23대 회장에 당선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반도는 2004년 기준 전국 78위의 시공능력순위에 올랐다. 권 회장은 반도주택과 반도종합건설, 반도공영, 반도개발, 반도모터스, 반도JAPAN 등을 운영하고 있다.

13세 때 고향인 다인면 삼분을 떠나 40여 년 만에 '반도신화'를 창조한 것이다.안계평야 외에는 비옥한 농지가 없고 구봉산과 비봉산 등 산지가 많은 지형 탓에 의성사람들은 경찰이나 공무원으로 투신하는 사람이 많았다.

고위 경찰 간부로는 경찰청장을 지낸 김화남(金和男) 전 의원, 대구지방경찰청장과 서울경찰청 차장을 거친 구종태 대경대학교수 등이 꼽힌다. 검찰과 수사권조정 협상을 총괄하고 있는 김학배(金學培) 경찰청 수사기획관(경무관)도 다인(多仁)사람이다. 그는 경북고와 경북대를 나와 사시 26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경찰청 혁신기획단에서부터 경찰개혁방안을 연구해 왔다.

김영주(金榮柱) 청와대 경제정책수석비서관도 개각이 있을 때마다 경제부처 장관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김 수석은 DJ정부 때 청와대비서실에서 정책기획비서관을 지냈고 재경부로 돌아왔다가 참여정부 들어 다시 청와대로 불려갈 정도로 기획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통일부 황하수(黃河守) 남북대화사무국장은 김대중정부 시절 남북교류협력국장으로 남북 민간교류협력의 새로운 물꼬를 트는 데 일조했다. 경북고, 서울대를 나왔다. 이병대(李炳坮) 국세청 법인납세국장은 어릴 때 고향을 떠나 부산에서 성장했다. 부산고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군인의 길을 가는 대신 국세청에서 대부분의 공직생활을 보냈다. 재경부 국세심판원 상임심판관으로 갔다가 올초 국세청으로 복귀했다.

건교부에서는 권도엽(權度燁) 차관보가 버티고 있다. 권 차관보는 행시 21회로 건교부 주택국장에서 차관보로 승진했다. 검찰·법원 등 법조계에서는 정 대검차장 외에 김영한(金英漢) 대구지검 2차장과 이용우(李勇雨) 대법관, 김윤권(金潤權) 서울 서부지방법원 부장판사 등이 앞서가고 있다.

김 2차장검사는 경북고 연세대를 졸업했고, 김 부장판사는 경북고 서울대를 나와 인천지법부장판사를 지내다 올들어 서부지법으로 옮겼다. 이 대법관은 사대부고와 서울대를 나와 64년 사시 2회로 판사의 길을 걷기 시작, 98년 서울지법원장을 지내고 대법관에 올랐다. 올해 임기가 만료된다. 강원일 변호사와 김동건 변호사도 빼놓을 수 없는 의성사람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을 맡고 있는 임주환(任周煥) 원장도 의성이 고향이다. 국회를 비롯한 정치권에도 적잖은 의성인맥들이 포진하고 있다.17대 국회에서는 강 원내대표를 비롯해 의성을 지역구로 당선된 김재원(金在原)의원, 김석준(金錫俊) 의원 등 3명이 의성출신이다.

정창화(鄭昌和) 전 의원은 16대를 끝으로 정계를 떠났고, 대구에서 당선됐던 이치호(李致浩) 전 의원과 신진욱(申鎭旭), 신진수(申鎭洙) 전 의원 등도 의성사람이라는 것을 십분 활용했다.

강현석(姜鉉錫) 경기도 고양시장은 한나라당 사무처출신으로 민선단체장에 오른 성공스토리를 자랑한다.대륜고와 고려대를 나와 민자당 사무처요원으로 정치권에 뛰어든 강 시장은 한나라당 기획조정국장으로 97년 대선에 일조했지만 실패하자 국회정책연구위원으로 가 있다가 2002년 지방선거에 나섰다.

이 밖에 전하성(全河聲) 국회 사무차장도 빼놓을 수 없다. 전 차장은 77년 입법고시로 국회에 발을 들여놓은 후 과기정통위 수석전문위원을 거쳐 지난해 국회 사무차장에 올랐다. 박봉국(朴奉國) 전 행자위 수석전문위원은 국회를 떠났다.

참여정부 들어서는 장관급에 의성사람은 없다. 의성사람들이 두각을 나타낸 것은 김영삼정부 때였다. 이경식(李經植) 전 경제부총리 겸 재경부장관과 이병태(李炳台) 전 국방부장관이 동시에 내각에 기용됐고, 우명규(禹命奎) 전 지사도 이때 서울시 지하철건설본부장에서 서울시 부시장, 경북지사, 서울시장 등으로 승승장구했다. 가음 출신의 이 부총리와 이 전 장관은 5촌간이라고 한다.

이후 DJ정부 때는 차흥봉(車興奉) 국민연금관리공단이사장이 99년 복지부장관으로 발탁돼 당시 논란을 빚던 의약분업사태를 해결하는데 나서기도 했다. 그는 현재 한림대학 교수로 있다. 김병일(金炳日) 김&장 법률사무소 고문은 공정거래위 부위원장까지 지냈으나 장관직에 오르지 못했고, 김순규(金順圭) 전 문화부차관도 예술의 전당 사장이 마지막 공직이었다. 차관급까지 오른 의성사람으로는 박운서(朴雲緖) 전 통상산업부차관, 김주수(金周秀) 전 농림부차관 등도 있다.

경제계에서는 손꼽을 수 있는 기업인이 거의 없다. 쌍마그룹을 이끌던 김동권(金東權) 전 의원은 섬유사업을 접었다. 서울시내 최대버스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유쾌하(柳快夏) 서울승합 대표이사는 서울에서 재력가로 손꼽힌다.

은행가에서는 의성사람이 돋보인다. 올초까지 대구은행을 이끌던 김극년(金克年) 행장이 의성출신이고 농협이 운영하는 남해화학의 김장규사장, 김진호 제일은행 부행장(웰스매니지먼트담당), 정현진 우리은행 부행장(자금시장본부장) 등이 있다.

경북 이전이 확정된 한국도로공사의 정해수 부사장도 의성이 고향이다. 정 부사장은 그러나 이리고와 전북대를 나왔다.(주)토펙스 김재문(金在文) 사장은 한국과학기기공업협동조합 이사장, 김상봉(金相鳳) 태영석회회장은 한국광업협회회장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안계고를 졸업했다. 우명규 전 지사도 안계고(현 안계종합고)를 나왔다.

학계와 문학계에서는 신세훈(申世薰) 한국문인협회이사장, 최영조(崔英造) 동국대 미술학과 교수 등이 있고 종교계에서는 가톨릭상지대학장을 지내고 현재는 케냐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류강하(柳康夏) 신부, 안계천주교회 주임신부와 안동교구청 사무처장을 지낸 조창래(趙昌來) 가톨릭상지대학장, 이종성(李鍾聲) 한국기독교문화진흥원장이 있다. 이 밖에 언론계에서도 동아일보 논설실장을 지낸 남중구(南仲九) 관훈클럽 신영기금 이사장, 남시욱(南時旭) 세종대 석좌교수, 김영한(金永翰) 전 국민일보 편집국장, 김학순(金學淳) 경향신문 미디어칸 대표, 윤길용 MBC PD, 신용환 SBS PD 등의 이름도 보인다.

의성사람들의 향우회 활동은 그리 활발하지 않은 편이다. 대구·경북 도민회 주축의 향우회조직 재구성이 추진되고 있지만 고위공직자 출신의 소규모 향우회와 의성읍출신의 '구봉회' 등 작은 규모의 활동은 활발하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